최근 원·달러 환율과 물가가 내림세를 보이고 주식시장이 뜻밖의 랠리를 이어가면서 경제 연착륙 기대가 커지고 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상당수 석학도 경기 낙관론을 폈다.
이 같은 전망에는 ‘인플레이션 정점론’이 확산하면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긴축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이에 힘입어 원·달러 환율은 내림세를 지속해 9개월 만에 최저치인 1230원대 안팎을 오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어느새 2400선에 바짝 다가섰다.
하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사는 한국이 성급한 낙관론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지난해 1439원90전(종가기준 연중 최고치)을 찍고 하향 중인 환율만 해도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개선이 아니라 미국 금리 인상 속도 조절과 달러화 약세 등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다. 국내외 경기 하강과 수출 부진, 경상수지 불안 등을 감안하면 환율 하락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작년 7월 6.5%로 정점을 찍었다고 하지만,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5%대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일곱 번 연속 기준금리(연 3.5%)를 올리면서 한계 기업이 도산 위기에 내몰렸고,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위기는 더욱 커졌다. 특히 고금리로 인한 가계의 부담은 소비 침체로 직결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서울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통화정책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세계 최고 수준(GDP 대비 10%)인 가계부채 문제를 꼽았다.
지난해 역대 최대인 472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암울한 수출 환경도 달라진 게 없다.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한국산 전기차 판매의 복병이 된 가운데 유럽연합(EU)도 역내에서 생산한 원자재를 사용한 제품에만 세금·보조금 혜택을 주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준비 중이어서 ‘보호주의 고래 싸움’에 한국만 등이 터질 판이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향후 10년간 연 3%대 성장률에 머물 것이란 ‘피크 차이나론’까지 나오면서 기댈 언덕조차 사라지고 있다.
작년 9월 말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재고만 41조원어치에 달한다. 소비 침체와 할부금리 급등 여파로 자동차 재고도 쌓이고 있다. 테슬라가 미국에서 신차 가격을 20%나 깎아주는 ‘폭탄 세일’에 나설 정도다. 위기 앞에 지나치게 위축돼도 안 되겠지만, 일시적인 환율·물가 안정세를 경제 연착륙 신호로 착각해 경계심을 늦추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