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DA 오류' 찾아낸 한국의 약학·수학 두 교수

입력 2023-01-04 17:11
수정 2023-01-04 23:43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약물 상호작용’ 예측식에 한국 연구팀이 개발한 수학 공식이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앞으로 FDA 승인을 받으려는 전 세계 제약사들은 한국 연구팀이 개발한 공식을 무조건 따라야 할 것입니다.”

김재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 및 계산과학연구단 연구책임자(CI) 겸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FDA의 수학적 오류를 찾아낸 것은 한국 연구팀이 세계에서 유일하다”며 4일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김상겸 충남대 약학대 교수와 함께 ‘FDA 약물 상호작용 지침서’의 수학적 오류를 찾아 보정하고 새로운 수학 공식을 내놔 주목받고 있다. 이 공식은 지난달 세계적인 학술지 ‘임상약리학 및 약물치료학 저널’에 게재됐다.

약물 상호작용은 두 가지 이상의 약을 함께 먹을 경우 약효가 떨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무좀약 항진균제와 알레르기 치료약 항히스타민제가 대표적이다. 두 약물을 각각 복용할 땐 아무 문제가 없지만 같이 복용하면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이런 이유로 FDA는 1997년부터 약물 상호작용 지침서를 발행해오고 있다. 시판되는 의약품 종류가 1만2000종이 넘는 가운데 모든 약물의 상호작용을 실험을 통해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FDA 지침서를 따라 검증하라는 취지다.

그러나 FDA 지침서의 수학 공식은 실제 실험 결과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업계 전문가는 “제약사들은 FDA 승인을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임의의 수를 곱하는 방식으로 지침서를 보정하는 일이 잦았다”고 전했다.

평소 의·약학에 관심이 많던 김재경 교수는 2017년 8월 우연한 기회에 FDA 지침서를 접하고 의문점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약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기초적인 수학 공식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임의의 수를 곱해 답을 구해야 할 정도면 FDA 지침서 자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돌아봤다. 김 교수는 평소 수학에 관심이 많던 김상겸 충남대 약대 교수를 찾아가 머리를 맞댔다. 두 사람은 “충분히 가능한 문제 제기이니 하나씩 검증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한 달에 최소 한 번씩 만나 수학 교수는 약학을, 약학 교수는 수학을 파헤치며 서로 문답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간에서 분비돼 약물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의 농도가 FDA 지침서 예측값보다 1000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은 오류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효소 농도와 관계없이 정확하게 약물의 대사 속도를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 공식 개발에 총력을 다했다. 새 공식을 이용해 약물 상호작용을 예측하고 실험으로 측정된 값과 비교하는 일을 거듭한 결과 80%에 달하는 예측 정확도를 도출했다. 이는 기존 FDA 수학 공식에 따른 예측 정확도(38%)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FDA는 김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라 지침서를 수정할 전망이다. 김재경 교수는 “수학과 약학의 협력 연구 덕분에 당연히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수학 공식을 수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상겸 교수는 “약물 상호작용 예측 정확도의 개선은 신약 개발의 성공률과 임상에서의 약물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