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탄소 배출 감축 목표치를 대폭 상향 조정했다. 일부 산업 분야에 대해 탄소배출권 구매를 면제해주는 ‘무료 할당제’는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탄소 국경세’ 시행과 맞물려 유럽으로 수출하는 국내 철강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U 의회는 18일 탄소배출권거래제(ETS) 개편을 위한 의회·이사회·집행위원회 간 삼자 합의가 타결됐다고 밝혔다. ETS는 탄소 배출량이 EU 각 회원국에서 정한 기준을 넘을 경우 초과량에 대한 배출 권리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역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개편안은 철강, 비료 등 수입품에 탄소 국경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기준이 된다. 내년 1~2월께 EU 27개 회원국의 동의와 EU 의회 표결 등을 거쳐 확정될 전망이다.
EU는 이번 개편에 따라 2030년 탄소 배출 감축 목표치를 2005년 배출량 대비 43%에서 62%로 높이기로 했다. 해양 배출, 폐기물 소각 산업 등도 ETS 적용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피터 리제 EU 의회 의원은 “녹색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분명한 신호를 유럽 산업계에 준 것”이라며 “기후변화와 싸우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철강, 화학 등 역내 탄소집약산업군에 대해 일정 수준까지는 탄소배출권 구매를 면제해주는 무료 할당제도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CBAM 도입으로 역외 수출 기업도 EU와 동등한 수준으로 탄소 배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한 무료 할당제를 유지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맞닥뜨릴 수 있어서다. 무료 할당 규모는 2026년 2.5% 감축을 시작으로 2034년에 완전 폐지할 예정이다.
CBAM도 무료 할당제 순차 폐지에 맞춰 2026~2034년 단계적으로 시행할 방침이다. CBAM은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이 EU가 정한 기준을 넘으면 초과분에 대해 수입업체가 비용을 부담하는 게 골자다. 사실상 관세가 오르는 효과가 있어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 등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도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EU 수출액은 철강이 43억달러(약 5조6000억원)로 알루미늄(5억달러), 비료(480만달러) 등에 비해 규모가 크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