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에서 가족과 있는데 장관 제의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아내와 딸들이 울면서 말리더군요. 집안 거덜낼 일 있냐고….”
지난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제의를 받았던 한 고위급 인사는 “가족이 뜯어말리는 바람에 장관직을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한평생 떳떳하고 청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해왔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가족이 상처 입는 게 두려웠다고 한다.
요즘 장관 후보자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인사청문회가 청렴하고 능력 있는 고위공직자를 검증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신상털기와 망신 주기 쇼로 변질되면서 유력 인사들이 줄줄이 입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 본인에 대한 질의보다 가족 등 후보자 주변 인물을 둘러싼 공방이 더 중요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가 박순애 전 장관 사퇴 이후 장관 후보자를 찾는 데 석 달이나 걸린 것도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이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조국 사태 이후 후보자의 자질이나 능력보다 자녀 문제가 가장 큰 변수가 됐다”며 “교육부 장관은 아예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빠를 것이란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왔다”고 토로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장관을 선택한 것도 ‘한 번 청문회를 통과해 본 인물’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이렇게 수장 없는 석 달간 교육부는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대학 구조조정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등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이 첩첩이 쌓였다.
정치권도 이 문제를 모를 리 없다. 인사청문회가 장관 임명을 어렵게 하는 걸 넘어 국정 효율성까지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후보 개인의 도덕성·과거사는 비공개 검증 단계에서 걸러내고, 인사청문회에서는 후보자의 정책 능력 검증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하지만 정당들은 여당일 때는 제도 개선을 주장하다가 야당일 때는 검증 기준을 높이자는 ‘내로남불’식 주장을 반복하면서 개선 가능성을 스스로 차버렸다.
지난 정권에서 “신상털기식 청문회라면 능력 있는 분들의 장관 기용은 엄두도 낼 수 없다”고 항변했던 더불어민주당은 후보자 자녀들의 사소한 흠결까지 찾아내느라 바쁘다. 시간이 흐르면 정권은 또 바뀐다. 야당은 자신들이 또다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걸까. 국가 경쟁력까지 갉아먹는 현 방식의 인사청문회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