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4대 과학기술원 예산 약 5200억원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에서 교육부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로 이관하는 방안을 13일 전격 철회했다. 과기정통부가 기재부 방안에 대해 ‘불수용’ 의견을 전달하면서다.
기재부는 애초 이번주까지 4대 과기원 총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회계 이관을 확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12일자 한경 보도 이후 주말 사이 입장을 바꿨다. 이로써 이달 초 기재부 담당자들이 과기정통부를 ‘패싱’하고 4대 과기원 총장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려 불거진 사태는 일단락됐다.
과학기술계는 주말 내내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과기원 학생들은 ‘과기원 예산의 교육부 편입을 막아달라’는 내용의 국회 청원을 시작하며 한경 기사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기사 조회는 50만 건, 댓글은 1600개를 넘어갔다. KAIST 새내기과정학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메일을 보내 “학생 사회에서도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고 했다.
과기정통부는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KAIST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4대 과기원은 한국 과학기술 연구의 최첨단에서 핵심 인력을 육성한다. 기재부가 돈줄을 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건 애초부터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도 기재부 철회 결정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주말 사이 결론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는 것은 회계 이관 추진이 처음부터 졸속이었다는 사실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이번 사태에 대해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엄중히 항의해야 한다. 재발 방지 대책도 받아내야 한다. 사안과 관련된 기재부 소속 실·국·과장을 상대로 경위도 따져 물을 일이다.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배경에 최근 임명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영향이 있다는 우려 섞인 시각도 나온다. 교육부와 과기정통부를 통합하려는 첫걸음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인 이 부총리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다는 사실이 이런 의심을 더 키우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패권 경쟁의 시대에 과학기술은 한 나라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이다.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얽매여서는 결코 안 된다. 이번 진통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후 강조하는 ‘과학기술 중심 혁신국가’를 제대로 뒷받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