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10일 14:3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인수·합병(M&A) 이후 기업 가치를 높이고 조직 융합을 돕는 인수후통합(PMI) 업무가 전략컨설팅 및 회계법인들의 주요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대형 글로벌 M&A를 잇따라 단행하면서 인수 기업의 안착을 돕는 자문 시장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무리된 SK하이닉스의 10조원 규모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문 인수 이후 PMI컨설팅을 맡은 딜로이트가 단일 건으로만 60억~8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딜로이트는 해당 M&A 협상에선 매각 측인 인텔 측을 자문했지만 인수 후엔 SK하이닉스를 도와 PMI 자문을 맡았다. 딜로이트 미국 본사에서 현지 컨설턴트들이 대거 파견돼 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PMI컨설팅은 M&A 이후 기업가치 증대를 위한 모든 작업을 포괄한 컨설팅을 뜻한다. 통합 법인의 전략마련에서부터 회계·재무·IT 시스템 등의 통합과 마케팅, HR, 성과평가(KPI) 지표 마련 등 전 분야를 점검한다. 각 분야별로 합병 혹은 인수 이후에 불거질 문제점들을 미리 감지하고 대응하는 업무도 맡는다. 현업에선 '온도계를 꽂는다'는 표현을 쓴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간 컨설턴트들이 투입된다.
국내 기업들의 M&A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데다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PMI 컨설팅 수요도 덩달아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진 국내기업들의 해외 대형 M&A에선 외부 컨설팅이 사실상 필수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인텔에서 낸드플래시 사업부문을 분할(카브아웃)한 후 미국에 법인(솔리다임)을 세운 데다 중국 내 공장까지 이관받다보니 작업이 더 길고 복잡했다는 평가다. 인텔 출신 경영진과 엔지니어들에 새 KPI를 적용하고 SK그룹 문화를 이식하는 작업도 이어졌다. DL케미칼도 지난해 2조원 규모 미국 특수화학회사인 크레이튼을 인수하면서 삼일PwC에 PMI컨설팅을 맡긴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넘치는 유동성을 기반으로 비교적 높은 밸류에이션에 인수한 사례가 많아지면서 컨설팅 수요가 더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비싼 가격을 정당화하기 위해선 보다 꼼꼼한 기업가치 개선 전략이 필수적이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컨설팅 수요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외부 자문사들의 PMI를 꺼려하는 국내 기업들의 문화도 옅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9조원 규모 전장업체 하만 인수에서 PMI를 따로 안하고 하만을 독립법인으로 운영해왔다. 지난해까지 하만이 부진에 빠지자 비공식적으로 외부 기관에 PMI와 관련된 컨설팅을 맡긴 것으로 전해진다. PEF들도 컨설팅을 고용하지 않고 선임한 경영진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PMI 계획을 세우는 게 일상적이었지만, 인수 기업들의 몸값이 점차 오르면서 외부 컨설팅펌과 함께 가치 제고 계획을 면밀히 짜고 있다.
한 글로벌 컨설팅사 관계자는 "국내에선 트위터를 인수하자마자 대량 해고에 나선 일런 머스크처럼 인위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능하고 공정위 등 규제당국 눈치에 제품 가격도 함부로 조정하지 못하는 등 제약이 크다"며 "한정된 전략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미션들이 주어져야되다보니 외부 자문을 받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PMI컨설팅 시장을 두고 전략수립부문에 특화한 맥킨지·베인앤드컴퍼니·BCG(MBB) 등 글로벌 전략컨설팅사들과 주요 회계법인들이 격돌하고 있다. 전략컨설팅사들은 글로벌 기업들을 자문하며 쌓은 트랙레코드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내세워 고객군을 흡수하고 있다. 회계법인들은 전략에서 운영업무까지 복합적인 서비스를 한번에 해줄 수 있는 곳이 회계법인뿐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EY한영은 올해 초 전략컨설팅사인 티플러스를 인수했고 딜로이트안진은 국내 컨설팅사인 네모파트너즈의 인수를 검토하는 등 회계법인들은 규모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략 측면에 집중하던 맥킨지 베인앤드컴퍼니 BCG 등도 오퍼레이션 분야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