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좌파 성향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을 누르고 승리했다.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후보가 대접전을 벌인 결과 룰라 후보가 득표율 50.8%로 승리했다. 여론조사에서 룰라가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예상은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조야에서는 룰라의 승리에 대해 자못 긴장하는 모습이다. 룰라의 승리로 중남미에서 ‘핑크 타이드’ 시즌 2가 완성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핑크 타이드(분홍 물결)는 중남미의 우파 독재정권이 무너져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1990년대 말부터 중남미 전역에서 좌파 정부가 연쇄적으로 탄생한 현상을 가리킨다. 이들 좌파 정권은 경제 실정과 부패 등으로 2010년대에 차례로 무너졌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좌파 정권이 연이어 다시 탄생한 것이다. 룰라까지 승리함으로써 중남미에서 인구와 경제 규모가 가장 큰 6개 나라 모두에서 좌파가 집권에 성공했다. 이 가운데 콜롬비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좌파 정권이 수립됐다.
안마당이라고 생각하는 중남미에서 좌파 정권이 연속해 탄생한 것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일정 정도 이해는 되지만, 핑크 타이드 시즌 2가 시즌 1과 같은 의미나 영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첫째, 핑크 타이드 시즌 1의 지도자들은 2000년대 중반에는 중국발 1차산품 호황, 2000년대 말에는 미국의 이자율 인하 같은 우호적인 거시경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이 때문에 공공지출 확대로 인기를 얻어 선거에서 승리하고 후계자도 지명할 수 있었다. 반면에 지금의 지도자들은 거의 ‘완벽한 폭풍’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극심한 타격을 받은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불안정과 미국 이자율 인상의 후폭풍을 겪고 있다. 재정면에서 운신의 폭이 좁다.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가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높은 지지율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우파 정권의 연속된 패배에서 확인됐듯이, 집권세력에 대한 반감이 중남미의 지배적인 정치적 정서인 점을 감안하면 핑크 타이드 시즌 2는 시즌 1에 비해 훨씬 더 짧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둘째, 중남미 모든 나라에서 사회적 분열이 너무나도 심해져 2000년대 말 룰라가 누렸던 것 같은 높은 지지율은 이제는 어디에서도 기대하기 어렵다. 브라질의 예를 들자면 선거운동이 시작될 때만 해도 룰라가 1차 투표에서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국은 결선투표까지 가서 신승했다. 이것만 보아도 얼마나 심하게 나라가 갈라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보우소나루에게 투표한 수천만 명의 브라질 유권자는 결과에 쉽게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룰라는 통합을 강조하지만 정파를 넘는 사회적 합의는 쉽지 않고 꼭 필요한 개혁을 추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셋째, 첫 번째 핑크 타이드의 지도자들은 지역통합과 지역공동보조에 적극적이었지만 시즌 2의 지도자들은 이웃과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을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도 경제적 관점에서 이웃 나라의 중요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2008년 지역 내 무역은 중남미 총수출의 20%를 웃돌았다. 그러나 현재 이 비중은 대중국 1차산품 수출이 늘면서 3분의 2 수준으로 급감했다. 핑크 타이드의 재등장으로 대통령들이 같이 사진 찍는 일은 늘겠지만 이들이 방문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지는 이웃 나라 수도가 아니라 베이징과 워싱턴DC가 될 것이다.
넷째, 핑크 타이드 시즌 2의 지도자들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아 보인다. 물론 시즌 1의 지도자들도 다양했다. 칠레의 바첼레트 같은 민주주의자도 있었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같은 독재자도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좌파 이념이나 아젠다에 충실했다. 시즌 2의 지도자들은 일반화가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민주주의, 환경, 성소수자 권리 등에서 엄청나게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이 통일전선을 형성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핑크 타이드 시즌 2는 비우호적 환경 때문에 오래 가기도 쉽지 않고 국제적으로 큰 영향을 줄 만큼 공동전선을 펼치기도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