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리서치 연구원의 '깜짝 제안'…"클린룸 구경해볼래요?"

입력 2022-10-17 17:57
수정 2022-10-18 02:18
미국 샌타클래라에서 북동쪽으로 20여 분을 더 달리면 프리몬트가 나온다. 이곳에는 세계 장비 3위 기업 램리서치 본사와 연구개발(R&D) 시설이 밀집해 있다. 램리서치는 식각 장비 분야에서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하면서 ‘식각의 제왕’으로 불린다. 식각 공정은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20조원을 기록했고, 직원은 1만6300명에 달한다.

지난달 22일 본사를 방문해 1층에서 기술 미팅을 한 뒤 2층에 있는 클린룸으로 이동하자 램리서치 관계자는 기자에게 예상치 못한 제안을 했다. 당초 윈도투어로 취재를 제한했지만 클린룸 내부까지 공개하겠다고 했다.

연구원들이 건넨 방진복과 방진화, 방진모자, 방진 마스크, 보안경까지 단단히 착용하고 클린룸으로 진입하자 엄청난 굉음이 귀를 압도했다. 온갖 부품과 복잡한 선으로 연결된 최첨단 반도체 장비들이 뿜어내는 기계음이었다. 완벽한 차음을 구현했다는 연구원의 말대로 육중한 출입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클린룸 내외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보통 반도체 기업은 클린룸을 외부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보안 문제와 불순물 차단을 위해서다. 기자의 램리서치 클린룸 진입은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다. 동행한 현지 관계자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대다수 반도체 기업이 자료 화면 등을 통해 공개하는 클린룸 내부 영상과 이미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마치 무성영화 같았지만 실제로 본 클린룸은 훨씬 생동감이 넘쳤다.

클린룸 내부 온도는 늦가을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추웠다. 가이드를 맡은 김영오 램리서치 연구원(박사)에게 내부 온도에 대해 묻자 그는 장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10도 이하로 유지한다고 답했다. 내부 공기는 청량감이 뚜렷하게 느껴질 정도로 깨끗했다.


김 연구원은 이번엔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클린룸 바닥은 작은 구멍이 수백 개씩 뚫린 철제 패널이 기계와 엔지니어들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클린룸에 먼지 입자가 하나도 쌓이지 않도록 천장에서 바닥 패널에 이르기까지 낮은 온도의 깨끗한 공기가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었다.

엄청난 굉음을 뒤로하고 램리서치 본사와 구름다리로 연결된 릭가초 R&D센터에 다다르자 이 업체가 가장 최근 선보인 최첨단 장비 플랫폼 ‘센스아이(Sense.i)’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센스아이는 대표적인 식각 제품으로 인정받는 ‘키요(Kiyo)’와 ‘플렉스(Flex)’ 모듈에서 보다 업그레이드돼 가장 진보적인 장비로 꼽힌다. 균일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식각 성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수율을 최대화하고 웨이퍼 비용은 크게 낮출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장비 크기도 전 세대의 절반으로 줄여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센스아이에는 램리서치의 ‘인텔리전스’ 기술이 적용됐다. 식각 장비 스스로 웨이퍼 상태를 인식하기 때문에 반도체 제조사들이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패턴과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자율 유지·보수 기능까지 갖춰 비가동 시간과 인건비를 동시에 줄였다.

팀 아처 램리서치 최고경영자(CEO·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식각 초격차’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우리는 식각 및 반도체 소자와 관련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가장 앞선 솔루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력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과학’과 ‘수학’ 능력을 갖춘 인재를 거론했다.

프리몬트=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