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인천공항공사, 한국수자원공사.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모두 앞으로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선언하는 'RE100'에 가입했다는 점이다.
RE100 캠페인을 주도하는 것은 영국의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이다. 2003년에 결성된 국제 비정부기구(NGO)다. 이 그룹은 2014년 ‘RE100’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불과 수년 만에 삼성전자를 비롯해 글로벌 기업 380여곳을 가입시켰다. 한국에서는 22곳이 이 선언에 합류했다.
클라이밋 그룹에서 RE100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는 마이크 피어스 시스템체인지 총괄이사와 매디 픽업 임팩트 매니저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 및 글로벌 ESG 포럼 강연을 통해 자신들의 장단기 목표와 달성 방법에 관해 상세히 설명했다.
◆"원전으로 기후변화 대응 너무 느려"
피어스 이사는 "클라이밋그룹의 목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행동을 '빠르게' 촉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재생에너지에 대한 기업의 수요를 활용해서 탄소 중립적인 에너지 공급망(그리드)으로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것이 RE100의 목적"이라고 했다.
RE100은 원자력발전을 통한 탄소중립 달성에 부정적이다. 피어스 이사는 "지난 30~40년 동안 원전은 중요한 탄소 저배출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온실가스 증가 속도를 늦추는 데 역할을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재무적인 관점에서 원전 건설과 운영은 (재생에너지보다) 경쟁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원전 건설에 평균 14년이 걸리는데, 기후위기 변화에 원전을 세워 대응하기에는 너무 느리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국경제 경쟁력 달린 문제" RE100은 기업의 목소리를 빌어 재생에너지의 공급량을 늘리도록 각국 정부를 압박하는 전략을 쓴다. 글로벌 기업이 많으면서도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은 이들에게 중요한 '타깃'이다.
피어스 이사는 "한국의 에너지원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4.7%)은 세계 평균(10%)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며 "중국, 베트남, 일본보다도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RE100 가입사들은 전체 전력 중 재생에너지 전력의 비중이 2%에 불과하다고 보고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이고 싶어도 공급이 없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경제가 세계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도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야 한다"며 "올해 내로 한국 정부에 관련 규제를 풀어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달라는 메시지를 보낼 계획"이라고 그는 밝혔다.
한국 기업들 중 상당수는 제조업 회사들이어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더 어렵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력 사용량이 많은 제조업체는 더 어려운 점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유통업체들과 달리 공장 등 시설의 분산도가 낮아 일단 전환하면 지역 에너지망에 큰 영향을 준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유사 등 화석연료 중심 기업들과 갈등을 겪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에너지기업이야말로 재생에너지 전환의 중심 축이 돼야 한다"며 "화석연료에 묶여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답했다.
◆"한국 재생에너지 투자자본 충분"지난 11일 열린 글로벌 ESG 포럼 연사로 나선 픽업 매니저도 "한국의 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재생에너지에 투자할 자본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정책적인 환경에 가로막혀 있다"며 "기업들의 목소리는 확실한데 정치인들의 지원 의지가 이를 가로막는 형국"이라고 평가했다. 픽업 매니저는 "정부는 기업의 요구에 응하고, 기업의 장벽을 이해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은/성상훈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