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아이가 있다. 이름은 ‘리아’. 생후 3개월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눈이 위로 말려 올라가고 팔이 머리 위로 홱 젖혀지더니, 곧 정신을 잃었다.
리아가 받은 진단명은 뇌전증. 의사는 리아에게 여러 약을 처방했고 매일 투약해야 할 용량과 횟수를 알려줬다. 하지만 리아의 부모는 처방법을 따르지 않았다. 약을 처방 용량의 두 배로 먹이거나 아예 먹이지 않았다. 그러니 의사가 리아의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의로운 선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리아 가족이 라오스 공산 세력을 피해 미국으로 온 소수민족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의사의 설명과 처방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리아의 나라>는 몽(Hmong)족 소녀 리아와 그 가족이 문화 충돌로 겪는 비극을 다룬 논픽션이다. 미국 의료진은 리아를 살리고 싶어 하지만 몽족의 문화를 이해하거나 몽족에게 미국의 의료 체계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뇌전증을 ‘코 다 페이’, 즉 영혼이 악령에게 붙들린 것으로 이해하는 리아 부모는 낯선 의사와 약을 불신한다. 두 문화가 부딪치는 사이에 리아는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얼핏 보면 ‘미개한’ 소수민족 부모의 어리석음이 아이를 불행에 빠뜨린 걸로 읽기 쉽다. 그러나 비극의 원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느 한쪽의 책임만 물을 수도 없다. 책은 당시 공립병원 머세드 커뮤니티 의료센터(MCMC) 의료진 인터뷰, 관련 판결문 등을 통해 비극을 해부한다.
언어장벽만 해도 그렇다. 단순히 ‘몽족은 영어를 모른다’고 할 수도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머세드시에는 태국 등을 거쳐 온 몽족 난민이 적지 않았다. 전체 인구 6만1000명 중 몽족 인구가 1만2000명을 넘었으니, 머세드 시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몽족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MCMC는 돈 안 되는 몽족 환자들을 위해 통역사를 채용하지 않았다. 몽족 잡역부나 환자의 10대 자녀 입을 빌려 의사소통을 했다. 이마저도 종종 건너뛰었다.
저자가 한 의사에게 ‘응급 수술 전에 알레르기, 식사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으면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 스스로를 동물병원 의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몽족이 미국으로 오게 된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보면 결국엔 미국 정부가 나온다. 몽족은 50여 년 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대리전쟁에 투입됐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은 라오스에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을 보내 몽족 게릴라군을 비밀리에 무장시켰다. 당시 라오스는 중립국이었지만, 오랜 프랑스 식민 지배로 국가 기반이 취약했다.
몽족 게릴라군은 북베트남군의 정보를 모으거나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으로 뚫은 보급로인 ‘호찌민 트레일’의 보급 물자를 가로챘다. 그런 밤에는 다시 라오스 인민군과 북베트남 군인이 마을을 기습했다. 집이 불타고 가족이 죽었다. 밭이 방치되고 가축이 버려지면서 몽족은 자급자족의 능력을 차츰 잃어갔다. 미군이 투하하는 식량으로 연명하던 몽족 대다수는 베트남전쟁 이후 미군이 철수하자 공산 세력의 보복을 피해 라오스를 떠난다. 일부는 그렇게 미국 땅을 밟았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건 1997년이다. 그해 미국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2010년 국내에 처음 출간된 이후 절판됐는데 의료계, 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복간 요청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중고 책이 6만원 넘게 팔렸다. 이번에 국내 출간된 책은 2012년 개정판을 번역했다. 초판에 있던 몽족에 대해 일부 잘못된 묘사를 바로잡았다.
1980년대 미국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2022년의 한국에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저출생 고령화의 대안으로 이민을 늘리자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민이 늘면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는 일은 잦아질 수밖에 없다. 난민에 대한 거부감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책을 한국어로 옮긴 이한중 번역가는 “한국은 ‘몽족의 아픔’과 비슷한 수난을 겪은 나라에서 단숨에 경제·문화 대국으로 성장했다”며 “문화 충돌의 피해자에서 어느덧 가해자의 위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저자는 앤 패디먼. 미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라이프> 전임 작가 등을 거치며 집필 활동을 해왔다. 국내 독자들에게는 <서재 결혼시키기>로 이름을 알렸다. 이 책도 일종의 문화충돌을 다뤘다. 부부가 결혼 이후 서재를 합치는 과정을 통해 다른 문화·정서·역사를 가진 두 인간이 한 가족이 되는 모습을 글로 풀어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어렵지만 해내야 하는 것이라고 <리아의 나라>는 말한다. “공감이라는 것이 참 어려워서 우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한 상태로 생을 살아간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