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경선 미술감독 "에버랜드 핼러윈 축제 오면 '오겜의 공포' 느낄 수 있어"

입력 2022-08-29 18:51
수정 2022-08-30 00:16
다음달 12일(현지시간) 열리는 올해 ‘에미상’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 게임’이 과연 왕관을 몇 개나 쓰느냐다. 오징어 게임은 미국 방송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등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수상 후보 중에는 디자인 부문도 있다. 강렬한 색감과 다양한 이미지는 오징어 게임 성공의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이 모든 건 채경선 미술감독(43·사진)의 손끝에서 나왔다. 2014년과 2015년 연속으로 대종상 미술상을 받은 그는 지난 3월 미국 미술감독조합상을 거머쥐는 등 영화 미술 분야에서 첫손에 꼽히는 ‘명장’이다. 비영어권 미술감독이 에미상 후보에 오른 것도 채 감독이 처음이다.

그런 그를 지난 27일 만났다. 장소는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이 아닌 채 감독의 ‘새로운 일터’였다. 경기 용인에 있는 국내 대표 테마파크 에버랜드다. 그는 다음달 2일부터 11월 20일까지 열리는 에버랜드의 핼러윈 축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채 감독은 “오징어 게임이 대박 나자 ‘굿즈를 제작해달라’ ‘함께 전시를 해보자’ 등 다양한 제안이 들어왔다”며 “에버랜드 핼러윈 축제 행사도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세대가 모이는 테마파크 공간을 매력 있게 꾸미는 일에 끌려 도전해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핼러윈 행사에서 그가 손을 댄 프로젝트는 ‘에버랜드 블러드 시티’로 불리는 호러 콘셉트의 공간 구성이다. 채 감독은 “지금까지 있었던 핼러윈 축제 공간과는 결이 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좀비가 불쑥 튀어나와서 겁을 주거나 피가 몇 방울 튀는 수준이 아니란다. 이를 위해 자신의 ‘전공’인 영화적 기법과 노하우를 담았다.

가장 먼저 한 건 영화와 같은 스토리를 공간에 심는 것이었다. 좀비들이 창궐한 도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좀비로 분장해 기차를 타고 탈출한다는 스토리 라인을 만들었다. 이곳을 찾은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좀비로 분장하고 옷도 갈아입고, 기차 탈출을 시도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곳을 찾으면, 곧 분위기에 이끌려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끼게 될 겁니다. 코로나19 탓에 삶의 활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추천드려요. 해방감과 쾌감을 안겨드릴 겁니다.”

채 감독은 ‘노력하는 미술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에버랜드 블러드 시티’ 연출을 위해서도 수많은 기차와 건축물 자료를 찾았다고 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 때도 작가와 연출감독의 상상 속에만 있던 공간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뒤적인다.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게임을 하러 이동할 때 나오는 미로 복도 기억하세요? 대본에는 그저 ‘구불구불한 복도’라고만 적혀 있었어요. 이 공간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 판화가 에셔의 작품, 단테의 <신곡> 속 지옥도를 자세히 살펴봤죠. 높낮이가 다르고 탈출구도 없는 복도, 무한 반복될 것 같은 공간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태어났습니다.”

그는 앞으로 영상을 벗어나 한층 더 다양한 공간 디자인에 도전할 생각이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협업이든 열린 마음을 갖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