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품 떠나 신생PE에 안기는 랩지노믹스 [한재영의 바이오 핫앤드콜드]

입력 2022-08-27 13:32
수정 2022-08-27 15:10
<i>국내 제약·바이오 종목 가운데 1주일 동안 가장 ‘핫(hot)’하고 ‘콜드(cold)’했던 종목을 쏙 뽑아 들여다봅니다. <한재영의 바이오 핫앤드콜드>는 매주 토요일 연재됩니다.</i>

8월 22~26일 주간 투자자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제약·바이오 종목은 랩지노믹스입니다.

랩지노믹스는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지난 19일 오후 최대주주인 진승현 대표가 사모펀드 운용사인 루하프라이빗에쿼티(루하PE)에 경영권을 넘긴다고 발표를 한 체외진단 업체입니다.



그날 랩지노믹스 주가는 24.13% 급등했습니다. 7170원이던 주가는 단숨에 8900원까지 뛰었습니다.

상승세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번주 5거래일 연속 하락했습니다. 22일 8.8% 하락하더니 23일에는 10.23% 떨어지며 낙폭을 키웠습니다.

랩지노믹스 주가는 경영권 거래 이슈 직전인 18일 주당 7170원이던 것보다 더 하락해 지난 26일 676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랩지노믹스는 분자진단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을 통해 다양한 질환을 파악하는 사업을 하던 체외진단 기업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코로나19 수혜 기업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실시간 유전자증폭(RT-PCR)과 신속항원진단 키트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332억원이었던 랩지노믹스의 한 해 매출은 2020년 1195억원으로 늘더니 2021년에는202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익도 같은 기간 11억원(2019년)에서 549억원(2020년), 1045억원(2021년)으로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으로 올 2분기 매출은 작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습니다.

2분기 랩지노맥스 매출은 219억원으로, 전년 동기 539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영업이익도 245억원에서 54억원으로 급감했죠.

랩지노믹스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진단에서 나아가 신약개발 사업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현재 면역항암제(LGP-S01)와 코로나19 백신(LGP-V01) 등의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후보물질 발굴 단계이거나 전임상 단계입니다.

페리틴이라는 단백질을 활용하는 신약 후보물질인데, 페리틴이 면역세포가 생성되는 림프절에 잘 들어간다고 합니다.

페리틴에 면역세포를 자극하는 약물을 담아 체내 주입하면 면역 활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신약 파이프라인입니다.

코로나19 수혜로 탄력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던 차에 랩지노믹스 창업자인 진 대표가 경영권을 루하PE에 매각한다고 전격 발표한 겁니다.

진 대표가 보유한 지분 12.7% 전량을 900억원에 루하PE가 사들이고, 루하PE는 랩지노믹스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340억원, 전환사채(CB) 발행 600억원을 투자하게 됩니다.

최대주주 지분을 전부 가져가고, 여기에 유증과 전환사채 투자를 통해 추가로 지분 확보를 하는 구조인 겁니다.

결과적으로 진 대표에게는 900억원의 자금이 돌아가고, 랩지노믹스 회사에는 약 940억원이 유입되게 됩니다.

20여년 간 랩지노믹스를 이끌어 온 진 대표는 경영권 매각 후 아예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뗀다고 합니다.

랩지노믹스의 이번 주가 하락에 대한 투자업계 진단을 정리하면 '대세는 막기 어렵다'입니다.

한 펀드매니저는 "코로나19 특수 효과가 약화하면서 다른 진단업체들과 마찬가지고 랩지노믹스 기업가치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며 "그런 와중에 인수합병(M&A) 이슈가 나오면서 주가가 일시적으로 위로 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19일 주가 급등세를 견인한 건 개인투자자였습니다. 개인은 이날 14만주를 순매수한 반면, 기관은 13만주를 내다 팔았습니다.

이후 5거래일 연속 하락할 때도 기관은 25일 소량 순매수한 것을 제외하면 순매도로 시장에 대응했습니다. 외국인도 19일과 22일 각각 1만7000주와 11만여주를 순매수했지만 이후 순매도세로 돌아섰습니다.

개인은 주가가 10.23% 급락한 23일 되레 19만주를 사들였죠.

단기적인 주가 움직임과는 별개로 랩지노믹스의 경영권 이전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갈리는 것 같습니다.

일단 기대입니다. 랩지노믹스가 루하PE의 자금 수혈을 받아 해외, 특히 미국 진출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체외진단 시장입니다.

회사는 투자금으로 미국 실험실 표준 인증인 '클리아(CLIA)' 인증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현지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했습니다.

클리아 랩(lab) 인증은 임상 검사를 수행하는 기관의 실험실이 정확도와 신뢰성 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인증을 받은 기관을 인수해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의미죠. 국내 진단업체들이 많이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랩지노믹스는 6월말 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으로 570억원 가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확보하는 투자금과 기존 보유 현금이 미국 사업 진출에 투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려도 있습니다.

랩지노믹스 경영권을 인수한 루하PE는 지난해 설립된 신생 PE입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벤처캐피탈(VC)인 SV인베스트먼트 심사역을 거친 이종훈 대표가 설립했습니다. 이 대표는 중앙대 약대 출신입니다.

글로벌 시장 개척에 경험이 많지 않은 국내 신생PE가 미국 체외진단시장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겠냐는 물음표를 던지는 시각이 있습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효과로 밸류에이션이 기저(base) 대비 이미 올라 있는 랩지노믹스 경영권을 인수해 성과를 내고, 수익을 거둬 엑시트를 하려면 기존 사업에서 만들기 어려웠던 확실한 실적 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벤처캐피탈(VC) 심사역은 "미국 바이오 회사들은 PE가 최대주주인 경우가 많지만, 이사회 구성이 경험 많은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탄탄하기 때문에 회사 성장이 가능한 구조"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모델을 추구하다면 승부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