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서 물러난 뒤 “무위도식하기 싫어서 경비회사 소속 경비로 일했다”는 남래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후보자의 지난 25일 국회 인사청문회 발언이 잔잔한 울림을 낳고 있다. 1976년 체신청(현 우정사업본부) 공무원으로 시작한 남 후보자는 36년의 공직생활 중 25년을 선거관리 업무에 종사하면서 경남·인천선관위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명예퇴직한 뒤에는 6년 반 정도 대학에서 강의했고, 2020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민간 경비회사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그는 “선관위 재임 기간은 물론 퇴직한 이후에도 정치 활동을 하거나 선거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관련 기관이나 로펌 등 전관예우를 받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퇴직할 때 세운 원칙을 소개했다. 절대로 정치권이나 후배들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다면 후배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해야 하고, 퇴직한 선배가 후배들이 열심히 일하는 걸 방해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선관위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선관위의 위상과 예우, 일하는 여건이 그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여건은 힘 있는 다른 기관에 비해 열악하지만 여건만 보고 일하는 건 공무원의 자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그는 지난 3월 대선 때의 사전투표 부실 관리, 선관위원의 편향성 시비, 자의적 유권해석 논란 등을 들어 “세계적인 모범 선거관리기구로 위상을 확립했던 중앙선관위의 위상과 권위가 크게 추락해 기관 창설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명예직인 선관위원장의 상근직 전환 및 겸직 금지, 대통령의 상임위원 임명 폐지, 중앙위원 구성 다양화 등 해결책도 제시해 “교과서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퇴임 후 10년의 현업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인사청문회로는 이례적으로 여야 의원 다수가 “흠을 찾을 수 없다”고 찬사를 보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름대로 공직 생활을 충실히 했고, 퇴직 후에도 공직자 출신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간소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왔으나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니 많이 부족했다는 점을 깊이 성찰하게 됐다.” 지난 10년간 경제부처에서 국내 최대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이 100명을 넘는다고 한다. 대법관 출신마저 로펌으로 가는 세상이다. 경찰의 권한이 커지면서 로펌으로 이직하는 경찰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남 후보자의 삶을 보며 공직자의 소명과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