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하도급업체 노동조합이 장기화하고 있는 파업 사태 해결을 위해 ‘4자 대화’ 방식을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하도급업체 노사뿐만 아니라 원청인 대우조선해양과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함께 교섭에 나서라는 요구에 정부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20일 노동계에 따르면 회사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교섭’의 당사자는 근로계약을 맺은 노사다. 따라서 하도급노조가 주장하는 ‘임금 30% 인상’의 교섭 당사자는 원칙적으로 하도급업체 노사다.
그럼에도 대우조선해양 하도급노조가 4자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나온 한 판정 때문이다. 대리점(하도급) 소속 택배기사들이 원청 격인 CJ대한통운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사건에서 중노위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며 원청이 교섭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정대로라면 하도급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파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경제계는 중노위 판정에 발칵 뒤집혔고, CJ대한통운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현재 이 사건은 법원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 판정을 기점으로 원청을 불러내려는 하도급노조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노동계가 주로 내세우는 ‘비정규직 제로’ ‘파견 철폐’ 등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어 확산되는 움직임이다. 이미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등 국내 대기업도 하도급노조의 교섭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계는 하도급노조 주장에 대해 “교섭 상대를 입맛대로 바꾸겠다는 것”이라며 “근로계약 당사자가 교섭의 당사자라는 노동법상 근간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원청이 움직이지 않으면 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이 개선되지 않는 구조가 문제”라고 맞서고 있다.
한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대우조선해양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이를 노동계가 공박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한국수자원공사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이 임금을 올려달라며 원청을 점거해 주거침입죄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라고 판단한 최근 대법원 판결을 들어 “하도급노조가 대우조선해양 사업장을 점거한 것은 불법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하도급 근로자의 쟁의행위가 사회통념상 수인한도(감내할 수 있는 한도) 내에 있는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하루 300억원의 손해를 사업주가 견딜 수 있는 손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 노동법 교수는 “수자원공사 파업은 3일 만에 평화롭게 끝났다”며 “이와 달리 생산시설인 도크를 점거해 가동 불능케 한 것은 노조법에서 금지하는 ‘전면적·배타적’인 점거로 보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앞서 경찰은 재물손괴와 건조물 침입, 퇴거 불응 등의 혐의를 적용해 대우조선해양 하도급 노조 집행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