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체·선 굵기까지 베꼈다…교수 출판 서적 '표절 의혹'

입력 2022-07-17 17:08
수정 2022-07-18 00:20
대학교수 2명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 다른 책에서 72건의 그림을 그대로 베껴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학계가 시끄럽다. 지난달 윤성로 서울대 교수 연구팀에서 논문 표절 사건이 터진 뒤 한 달도 안 돼 교수 사회에서 다시 한번 표절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17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표절 의혹이 제기된 책은 을지대 A교수와 여주대 B교수의 이름으로 지난해 7월 출간된 《회로이론 및 실습》이라는 전기전자공학 전공서다. 이 책에 들어간 회로 도안 삽화 72개가 앞서 2015년 나온 《기초회로이론실습》에 삽입된 그림과 동일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원도서의 저자가 대학 강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자료의 그림도 복제한 것으로 보인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그림들은 원본을 그대로 복사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똑같다. 예를 들어 A·B교수의 도서 7장 ‘교류신호의 기본이론’ 85페이지에 실린 회로 도안은 원본 도서의 480페이지에 실린 그림과 완전히 동일하다. 구성만 같은 수준이 아니라 그림에 삽입된 글씨체, 요소별 색깔, 선의 굵기마저 동일해 원본 그림을 그대로 복사해 삽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예 원저자의 이니셜이 박힌 그림도 있다. 원저자는 회로 도안 일부에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을 이용해 본인 이름의 알파벳 이니셜 세 글자를 새겨놓았다. 표절 의혹 도서의 89페이지에서 ‘직류 신호의 측정’을 설명하는 대목에 삽입된 그림에는 이 이니셜이 박힌 그림이 들어가 있다.

오류도 똑같다. 원저자가 잘못 표시한 전류 방향을 표절 의혹 도서에서도 똑같이 표시하고 있다. 표절 의혹 도서 40페이지에 삽입된 그림은 회로 도안상 플러스가 오른쪽, 마이너스가 왼쪽 방향에 있는데, 맞게 표시하려면 반대가 돼야 한다. 원저자의 대학 강의 교안과 도서에 있는 오류와 동일하다.

원저자가 이 같은 표절 사실을 알아차리고 항의하자 A·B교수는 합의금 5000만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원저자는 합의를 거부하고 경찰에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이들을 신고했다.

경기 광주경찰서는 그러나 A·B교수가 표절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사건을 ‘혐의없음’으로 종결시켰다. A·B교수가 직접 책을 쓴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집필한 다른 강사에 의해 명의를 도용당했다는 진술을 경찰이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4월 경찰의 불송치 결정문에 따르면 A·B교수는 “책을 실제로 집필하고 표절을 저지른 사람은 대학 시간 강사 C씨로, C가 본인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임의로 명의를 도용해 책을 냈다”고 주장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