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최근 급증하고 있는 비건 식품에 대해 처음으로 허위 표시·광고 여부 조사에 나섰다. 조사 대상은 100여 개 제품으로, 상당수 식품업체가 조사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식품은 통상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고, 제조·유통 과정에서도 동물성 실험 등을 배제한 식물성 식품을 말한다. 식품업계에선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비건 표시 제품 출시에 제동이 걸리는 건 아닌지 주목하고 있다. “기업 실증자료 검토 중”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100여 개 비건 식품에 대한 허위 표시·광고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식품업체들에 비건 제품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실증 자료를 요청해 관련 법 위반 여부를 검토 중이다.
식품업체들은 2019년 시행된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품별로 표시·광고한 사항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실증 책임을 갖는다. 법 시행 이전에는 정부가 지정하는 인증·보증기관이 있었지만, 지금은 공인된 기관이 없다. 비건의 경우 국내에 한국비건인증원, 비건표준인증원 등의 인증기관이 있으나, 민간 조직이어서 식약처가 관리·감독하지 않는다.
‘사업자 실증제’가 도입됨에 따라 인증기관으로부터 인증받았더라도 비건임을 입증할 책임은 해당 제품을 표시·광고한 식품기업에 있다. 비건이 아닌데도 비건이라고 허위 표시·광고한 게 적발되면 과징금 또는 영업정지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대체육에 한정하지 않고 비건 제품 전체적으로 자료를 검토 중”이라며 “사업자들이 제출한 자료가 객관적으로 타당한지,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제조 과정에서 동물성이 배제됐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적 기준 없어 논란다만 비건의 법적 기준과 명확한 요건이 없어 식약처의 조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기업마다 ‘비건’ 또는 ‘식물성’이라고 표시·광고하더라도 동일한 기준을 맞췄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식약처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인 ‘완전한 채식주의’를 비건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생선을 허용하는 ‘페스코’나 달걀·우유를 먹는 ‘락토 오보’ 등 채식주의의 중간 단계를 충족하는 제품은 비건으로 보지 않겠다는 의미다.
식약처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비건으로 표시된 제품이 친환경적이고 건강에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엄격한 기준으로 관리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식품업계 관계자는 “100% 비건을 추구하기 위해선 제조시설부터 새로 지어야 하고, 원재료 관리에서 물류에 이르기까지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제품과는 분리해 작업해야 한다”며 “국내에서 이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급성장하는 비건산업대부분 식품사는 비건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고 최근 비건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런 만큼 식약처의 움직임이 비건 열풍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지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신세계푸드는 이날 식물성 정육점인 ‘더 베러’를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 오픈했다. 대체육으로 만든 햄, 미트볼, 다짐육을 비롯해 샌드위치, 쿠키, 치즈 등을 식물성 대체식품으로 만들었다는 게 신세계푸드의 설명이다.
CJ제일제당은 ‘플랜테이블’이란 브랜드로 비건 만두를 판매하고 있다. 풀무원은 ‘지구식단’ 브랜드로 만두, 볶음밥을 출시했다. 오뚜기는 비건 참치를, 삼양은 비건 라면을 판매 중이다. 한국채식비건협회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2008년 15만 명에서 지난해 250만 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수정/이지현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