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원빈이 송혜교에게 했던 대사다. 요즘 정부와 정치권의 물가 대응이 흘러간 드라마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기름값도 낮추라고 하고, 대출 금리도 내리라고 하고, 골프장 그린피까지 잡겠다고 나섰다. 국민을 향해 이렇게 묻는 것 같다. “기름값, 대출 금리, 그린피 얼마면 되겠니?”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장 가격에 대한 정부 개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가격 통제의 결과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상한선을 정한다고 해 보자. 가격 상한선이 시장 가격보다 높다면 정부는 욕을 먹을 것이다. 가격 상한선을 시장 가격보다 낮은 수준에서 정하면 이 상한선은 시장 가격이 된다. 이런 조치는 단기적으로는 가격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생산자들은 공급량을 줄인다.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반면 가격이 내린 만큼 수요는 증가한다. 공급은 줄고, 수요가 늘어나니 시장에서는 심각한 공급 부족이 발생한다. 그런데도 가격을 올릴 수 없으므로, 공급 부족은 갈수록 악화한다. 소비자들은 암시장을 찾는다. 가격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제값을 받고 싶어 하는 생산자와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상품을 구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곳이 암시장이다. 지하경제는 이렇게 커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격상한제는 재화와 서비스의 품질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 생산자는 어차피 가격을 비싸게 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굳이 양질의 상품을 공급할 이유가 없다. 이전까지 무료로 제공하던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가 유료로 바뀌는 것도 가격상한제가 일으킬 수 있는 부작용이다. 1970년대 소주 도수가 낮아진 사연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물가를 낮추려는 시도는 동서고금에 걸쳐 빈번하게 나타났다. 1970년대 오일 쇼크로 기름값이 급등하자 미국 정부는 휘발유에 대해 가격상한제를 실시했다. 주유소마다 긴 줄이 늘어섰다. 기름값을 올릴 수 없자 생산자들이 공급을 줄이면서 휘발유가 더 부족해진 것이다. 기름을 넣는 차의 앞 유리를 닦아주는 등 그전까지 주유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던 서비스는 사라졌다.
미국 뉴욕시는 1940년대 후반 주택 임대료를 일정 수준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서민들의 임차료 부담을 덜어준다는 ‘착한 의도’에서였다. 그러자 건설업자들은 새 주택을 짓지 않았고, 임대업자들은 노후한 집을 수리하지 않았다. 임대료가 묶인 시장이 주택 공급 감소와 주택 품질 저하로 반격한 셈이다.
1970년대 한국에선 정부의 물가 통제가 때아닌 저도주 바람을 몰고 왔다. 정부가 소주 가격을 못 올리게 하자 주류 회사들이 소주에 들어가는 주정의 양을 줄였고 결국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30도에서 25도로 낮아졌다. 한양 쌀값을 낮추는 방법시장경제에서 가격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을 돕는 신호 역할을 한다.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생산을 늘리고 소비는 줄이라는 신호다. 가격이 오를 때 시장에 맡겨두면 생산자는 공급을 늘리고, 소비자는 수요를 줄여 자연스럽게 균형 가격을 찾아간다. 정부의 가격 통제는 생산을 줄이고, 소비를 늘리라는 정반대 신호를 내보내 시장을 왜곡한다. 왜곡이 오래가면 균형 회복도 더뎌진다.
조선 정조 때 한양 쌀값이 폭등했다. 정조는 쌀값을 비싸게 받는 사람은 엄벌에 처하겠다고 했다.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반대하고 나섰다. “한양 쌀값이 올랐다는 소식에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쌀을 한양에 가져와 팔려고 하는데, 그들을 처벌한다고 하면 상인들은 쌀을 도로 가져갈 것이고, 한양의 쌀 부족은 지속될 것”이라는 게 연암의 논리였다. 그는 가격 신호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었다.
기름값, 대출 금리, 그린피, 물건값을 정부가 규제하면 규제할수록, 각각의 시장은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가격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변수가 작동한 결과이기 때문에 정부가 단기적으로 급격하게 통제하는 것은 기름, 대출, 물건의 공급을 위축시킨다는 게 정설이다. 시장의 가격 조절 기능은 정부 통제가 적을 때 잘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