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 악기를 든 연주자들이 입장을 마친 뒤 나홀로 들어오는 한 명이 있다. 다른 연주자들과 비슷한 차림인 것으로 보아 지휘자는 아니다. 곧 이 사람의 지시에 따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일제히 악기 조율을 시작한다. 연주할 준비가 끝난 뒤 지휘자가 무대에 올라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이 사람. ‘의문의 인물’의 정체는 악장이다.
오케스트라를 학교 교실에 비유하자면, 악장은 일종의 ‘반장’이다.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악장과 수석, 일반 단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연주 전체를 이끄는 지휘자는 ‘교사’이고 단원들은 ‘학생’이다. 각 악기 파트를 이끄는 수석은 일종의 ‘조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악장은 지휘자의 보조도 하고, 단원 전체를 통솔하기도 하면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악장의 역할은 지휘자 못지않게 중요하다. 모든 악기의 악보가 합쳐진 총보(스코어)를 보고 전반적인 소리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악장의 역할이다. 지휘자에게 곡의 해석과 연주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현악기들이 활을 아래로 내릴지, 위로 올릴지 등의 방향까지 결정한다. 간혹 솔로 연주나 협연 연주자와 듀엣이 필요할 땐 악장이 오케스트라의 대표 솔리스트로 나서서 연주한다. 그야말로 실력과 리더십을 동시에 갖춰야 하는 자리다.
작지 않은 역할을 하는 만큼 나름의 권력도 지닌다. 무대 뒤 개인 대기실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지휘자를 제외하고 악장뿐이다. 지휘자가 등장할 때 단원들이 일어날지 말지도 악장이 결정한다. 연주가 다 끝난 뒤 퇴장하는 시점을 결정하는 것도 사실상 악장이다. 지휘자가 내려간 뒤에도 단원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가 많다. 이때 관객들이 박수를 계속 치면 지휘자가 몇 차례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하면서 인사를 한다. 그러다 악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하면 그때서야 단원들도 따라서 나가고, 관객들도 돌아갈 채비를 한다.
악장은 바이올리니스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로크를 넘어 고전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오케스트라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현악기가 주인공이 되는 교향곡이 다수 작곡됐다. 그중에서도 바이올린은 가장 높은 음역대로 주요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비중이 커졌다. 그렇게 바이올린 연주자 중에서 악장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케스트라에서 현악기군이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하는 영향도 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