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가 주도한 급등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종목 선별 방법은 비교적 단순했다. 업종 내 대장주를 고르거나 ‘키 맞추기’를 노려 덜 상승한 종목에 투자하는 식이었다. 주가 등락률은 조금 차이가 있더라도 같은 업종에 속한 종목은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올 들어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같은 업종에 속한 종목이라도 상반된 주가 흐름을 보이면서다. 전문가들은 실적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라고 강조한다. 단순 기대감이 아니라 숫자를 통해 기업 가치를 증명하는 기업에 선별적으로 투자하라는 조언이다. 종목별 엇갈린 주가 흐름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아는 연초 대비 1.09% 올랐다. 반면 현대차는 같은 기간 11.16% 하락했다. JYP Ent.는 같은 기간 9.07% 상승했지만 하이브는 34.95% 급락했다. KT는 연초 대비 19.62% 뛰었으나 LG유플러스는 보합에 머물렀다.
2차전지 업종에선 하이니켈 양극재 업체와 다른 기업 간 차별화가 심화하고 있다. 양극재를 생산하는 엘앤에프와 에코프로비엠은 연초 대비 각각 19.90%, 5.42% 상승했다. 같은 기간 셀 업체인 삼성SDI는 12.46% 하락했다. 2차전지 소재 업체 중에서도 음극재를 생산하는 대주전자재료(-15.70%), 분리막 업체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25.53%), 동박(전지박)을 생산하는 솔루스첨단소재(-26.11%) 등은 약세를 보였다. “불확실성의 시대…실적에 집중해야”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차질,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영업 환경이 악화하면서 종목별로 실적과 주가가 엇갈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적 방어에 성공한 기업에는 자금이 몰리지만, 부진한 기업에 대해선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차전지 관련주다. 양극재 업체는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판가에 전가하는 동시에 생산능력(CAPA)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실적 추정치가 올라가고 있다. 반면 올 들어 주가가 하락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와 솔루스첨단소재는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가 3개월 전 대비 하향 조정됐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지금 같은 하락장에선 개인뿐만 아니라 기관투자가와 외국인도 종목을 선별할 때 훨씬 신중해진다”며 “오르는 시장을 쫓아갈 때와 약세장에서 버티는 경우의 포트폴리오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는 “‘금융장세→실적장세→역금융장세→역실적장세가 반복된다’는 우라가미 구니오의 4계절 순환론에 따르면 지금은 역금융장세에 해당한다”며 “유동성이 줄어드는 역금융장세에서는 개별 기업의 숫자(실적)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낙폭이 큰 종목에 대해 저가 매수 관점으로 접근하기보다 실적이 안정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최 대표는 “단순히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년 동기 대비 증감률, 전 분기 대비 증감률, 증감의 이유, 호재·악재의 지속성, 향후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간접투자를 고려할 만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펀드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946개 주식형 펀드에는 연초 대비 2조306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개인 투자자가 대응하기 어려운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펀드를 고를 때는 기간별 수익률, 운용자산(AUM), 운용회사 평판, 펀드매니저의 운용 경험 등을 눈여겨보는 게 좋다”고 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