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대기업도 베낀 '日 식초업체'…작지만 센 기업들

입력 2022-06-03 17:13
수정 2022-06-03 23:49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은 6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재난 뉴스를 보던 도쿄 외곽의 한 빵집 사장은 이재민을 위해 빵 2000개를 보냈다. 하지만 지진으로 도로와 다리가 붕괴된 탓에 전달이 늦어져 30% 넘게 폐기해야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이 회사는 통조림 캔에 담긴 ‘캔빵’을 내놨다. 갓 구운 빵이 담긴 캔의 내부를 무산소 상태로 만들어 3년 이상 보존할 수 있게 했다. 언제 열어도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의 ‘캔빵’은 우주비행사들의 우주 식량으로, 전 세계 재난 지역의 1순위 구호물품이 됐다. 일본인들에게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회사’이자 사회공헌의 새 장을 연 브랜드 아키모토 베이커리 얘기다. 1947년 개업한 작은 빵집은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 매출의 60%가 ‘아키모토 캔빵’에서 나온다.

작지만 강한 기업이 일본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기업을 지키는 기업인들의 전략과 조직 이야기는 언제나 신선하다. 《일본 중소기업 진화생존기》는 일본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지금이야말로 전통과 혁신의 중간 지점에서 영속하고 있는 기업들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라고 말한다.

저자는 ‘강한 기업’의 정의부터 다시 내린다. 수익성과 매출보다는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갖췄는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일본에선 노포(老鋪·오래된 가게)를 ‘시니세’라고 읽는다. 선조로부터 이어온 업을 흉내내며 지켜왔다는 뜻인데, 시니세 기업의 96.6%가 중소기업이다. 이런 기업의 80%는 메이지 시대에 창업했다. 장기 불황 등으로 저공비행을 해온 일본 경제에 버팀목 역할을 했던 주역들이다. 책은 일본의 28개 강소기업의 생존법을 다룬다. ‘옛날식 다방’으로 프랜차이즈 커피의 새 역사를 쓴 고메다커피, 대기업이 모방할 만한 제품만 내놓는 ‘역발상 약자의 전략’으로 시장을 키운 식초기업 이이오양조, 퇴직한 직원을 불러 모아 과거의 히트 상품을 새로운 완구로 재탄생시킨 타카라토미 등 다양한 업종과 분야를 다룬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