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만에…신용정보업계 대부 퇴장

입력 2022-06-01 17:30
수정 2022-06-02 00:37
“31년 동안 사업가로 살았으니 남은 인생은 다른 사람을 돌보고 함께 배우며 살고 싶습니다.”

자신이 일군 기업을 떠나는 윤의국 고려신용정보 회장(74)은 “떠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시종 웃는 얼굴이었다. 국내 채권추심업체 1위이자 신용정보업계 유일한 코스닥 상장사인 고려신용정보의 창업주인 그는 2일 정식 퇴임한다. 1991년 6월 회사를 설립한 지 31년 만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동 본사에서 만난 윤 회장은 “앞으로 신용불량자, 탈북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경제·금융 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했다. 국내 신용정보업 불모지 개척국내 23개 채권추심업체 중 고려신용정보의 시장점유율은 17.2%에 달한다. 민·상사, 금융, 통신 등 세 가지 채권을 모두 추심하는 유일한 업체다. 채권추심 외에도 신용조사업, 금융권 인력 운영 대행, 대부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1991년 서울 신사동의 한 사무실에서 직원 7명을 두고 임차료도 내지 못해 허덕이던 작은 회사로 시작한 고려신용정보는 작년 말 기준 매출 2200억원, 시가총액 1217억원의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출발은 민간 최초 신용조사업체였다. 신용정보업의 일환인 신용조사는 거래 상대의 신용도, 상환 능력 등을 조사하는 게 주 업무다. 지금은 금융 거래의 필수 절차지만 윤 회장이 회사를 창업한 1991년 당시엔 이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다.

윤 회장은 일찌감치 시장을 포착했다. 충북 청주 출신인 그는 1987년 서울에서 은행 공수표, 기업 민원서류 따위를 대신 발급받고 관공서에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용역 사업을 하다가 동명이인의 서류를 잘못 떼는 실수로 벌금을 물었다. 신용조사법 위반이었다. “그때 법을 알았죠. 반년을 공부하고 또 7개월을 관할 경찰청을 쫓아다니면서 우리나라에도 신용조사업이 왜 필요한지 설득한 끝에 처음으로 허가를 받아 회사를 세웠습니다.” “건전한 추심, 신용사회 정착 첨병”윤 회장은 1998년 채권추심 허가까지 받아 사업을 빠르게 확장했다. 2002년에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그는 “상장한다는 건 기업의 약점을 모두 들춰내는 것이지만 그로 인해 더 투명하고 반듯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윤 회장은 2000년 신용정보협회가 출범했을 때를 꼽았다. 당시 1년 넘게 25개 회사를 일일이 설득해 협회를 세우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후 불법 채권추심에 대한 처벌 강화, 공정한 채권추심을 위한 법 제정, 업계 인식 개선 등을 주도했다. 윤 회장은 “채권추심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 선순환을 위해 꼭 필요한 산업이지만 여전히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며 “업계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윤 회장이 물러나면서 고려신용정보는 2세 경영 체계를 더 확고히 하게 됐다. 현재 대표이사는 윤 회장의 장남이자 지분 8.5%를 보유한 대주주인 윤태훈 사장이 맡고 있다. 2005년 고려신용정보 직원으로 입사한 윤 사장은 2018년 전문경영인인 박종진 전 사장의 뒤를 이어 대표이사에 올랐다. 지난 3월 말 기준 고려신용정보 지분은 최대주주인 윤 회장(15.1%)을 비롯한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이 48.8%를, 기타 주주들이 나머지를 보유하고 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