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노동조합에서 회사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정책팀장은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과 관련한 파장을 이같이 전했다. 김 팀장은 “대법원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노사 현장에서는 합의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는 “임금 삭감에 준할 정도로 업무를 적정하게 줄여줬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노사 간에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느냐”며 “고용노동부에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해줘야 할 텐데 그런 게 나오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대법원이 지난 26일 ‘연령 기준만으로 직원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기업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법조계에서조차 이번 판결에 대한 분석이 엇갈리면서 경영상 ‘사법 리스크’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정년을 유지한 채 임금만 삭감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무효라고 판단한 것일 뿐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회사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사법부의 판단은 개별 사안에 따라 다르게 나오고 있다. 정년연장형인데도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단한 사건도 있다. 대교는 2009년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대신 이르면 40대 중반부터 임금 삭감률이 30~50%에 이르는 수준의 임금피크제를 설계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9월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 고용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정 연령에 도달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정년연장형도 안심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반면 정년유지형이지만 회사가 승소한 사례도 있다. 지난 1월 선고된 인천환경공단 임금 소송 1심에서는 57세부터 임금을 깎고 감액률은 10~15% 수준인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고 봤다. 산업인력공단도 지난해 12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적법하다는 1심 판결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정부 가이드라인도 나오지 않으면서 기업들은 ‘알아서’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임금피크제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당일 노조로부터 임금피크제에 대한 입장을 설명할 것을 요구받았다. LG전자 사무직노조도 임금피크제 관련 임금 삭감률 조정을 회사에 요구하기로 했다.
기업들은 “하다못해 정부에서 컨설팅이라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재판부마다 제각각인 판결에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않는 정부 행정으로 기업들 한숨만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