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회원국 반발에…러시아산 원유 제재안 '후퇴'

입력 2022-05-10 15:13
수정 2022-06-09 00:02

유럽연합(EU)이 당초 내놓았던 '러시아산 원유 금수' 강력 제재안에서 한발 물러났다. EU가 '자원부국'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석탄 원유 등 각종 에너지 금수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회원국끼리 이해타산이 엇갈림에 따라 난항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EU 집행위원회 회의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EU 소속 해운기업들의 러시아산 원유 선적 및 운송 금지 방안은 철회하기로 했다"고 9일(현지시간) 밝혔다. 대신 유조선들의 선박보험 가입 금지안은 유지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연내 러시아산 원유를 단계적으로 금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6차 러시아 제재안을 최근 발표했다.

제재안에는 EU가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이지 않는 것 외에 EU 해운사들이 러시아산 원유를 제3국에 실어나르는 것까지 중단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 몰타, 키프로스 등 EU 국적선사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해운업 국가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유조선 운송 금지가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도 비슷한 조치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U 해운사가 빈틈을 보이는 사이에 미국 해운업계가 라이베리아, 마셜제도, 파나마 등과 같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FT는 "회원국들의 반발이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EU가 (선박보험 금지 방안만 남겨놓는 식으로) 초장에 내놓은 강력한 제재안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등 러시아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 국가들의 반발도 계속됐다. 이들 국가는 제재안 동참에 면제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이날 헝가리를 방문해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담판을 지으려 했지만,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EU 에너지원인 천연가스에 대한 금수 조치는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각종 우려를 낳고 있다. 독일 재무부 소속 고문인 톰 크레브스 독일 만하임대 경제학 교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독일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사용에서 벗어날 경우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2%가 증발될 것으로 추산됐다. 크레브스 교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금지 방안은 앞서 이미 합의된 석탄 금수 조치, 조만간 합의될 원유 금수 조치 등과 맞물려 독일 경제에 엄청난 침체기를 몰고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은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55%(2021년 기준)를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독일 정부가 러시아산 가스가 끊길 때를 대비한 비상 대책을 이미 세워놨다"고 보도했다. 독일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추가 대출 및 보증을 제공하는 방안과 함께 일부 국유화 계획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