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새 정부 국무총리 후보에 한덕수 전 총리를 확정한 것은 ‘경제총리’를 통해 정권 초기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미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자국 이익을 놓고 첨예하게 갈등하는 신냉전 시대에 필요한 외교·안보 분야의 국정 경험을 두루 갖춘 것도 총리 후보로 낙점한 요인이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임명 동의가 필요한 여소야대의 정치 현실도 고려됐다. 인연·연고 없어도 능력 보고 중용윤 당선인은 총리 후보군을 압축할 때 “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를 잘 이끌어갈 능력과 경험을 우선하라”는 기준을 참모들에게 제시했다고 한다. 검찰총장 출신으로 행정 경험이 부족한 스스로를 보완할 국정 경험도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인선작업 초기부터 한 전 총리가 1순위로 거론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한 전 총리는 윤 당선인과 별다른 인연이 없다. 윤 당선인의 대선 캠프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인연이라면 10여 년 전 주미대사 시절 윤 당선인과 한 차례 조우한 게 전부다.
윤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엔 취임과 동시에 경제와 외교·안보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여러 정권에 걸쳐 검증된 한 전 총리의 국정 경험은 가장 큰 강점으로 평가됐다”고 말했다. 경제기획원 출신인 한 전 총리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모두 중용됐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화합형 총리’라는 평가도 있다. 한 전 총리는 자녀가 없는 데다 재산과 병역에도 흠결이 없어 과거 수차례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특별한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폭넓은 인맥…외교·안보에도 강점
윤 당선인은 한 전 총리가 미국 정·관·재계에 구축한 폭넓은 인맥도 눈여겨봤다고 한다. 한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주미대사와 무역협회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엔 국무총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이끌어냈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한 전직 관료는 “한 전 총리는 한·미 FTA 비준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국 정치인들과 폭넓게 교류할 수 있었다”며 “당시 버락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도 인연을 맺었다”고 전했다. 무역협회장을 지내면서 쌓은 기업인들과의 네트워크도 탄탄하다는 평가다.
윤 당선인 측 내부에선 한 전 총리의 기용에 대해 “참신성이 떨어지고 ‘올드’한 이미지를 준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고 한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 등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정치인들이 포진된 것도 이런 부정적인 비판의 근거가 됐다. 윤 당선인은 이런 비판 의견에 대해 “나이, 지역을 따지지 말고 능력과 전문성을 우선하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대신 향후 꾸려질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엔 상대적으로 젊은 전문가들을 중용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은 여소야대 정치 상황을 고려해 현역 의원들은 가급적 청와대, 내각에 기용하지 않는 방침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대통령 비서실장 등 하마평에 올랐던 장제원, 이태규, 권영세 의원은 모두 당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국회 동의·코로나 극복 우선 과제한 전 총리의 1차 과제는 국회의 총리 임명 동의를 얻는 일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더불어민주당이 순순히 동의할 가능성은 낮지만, 호남 출신 총리를 명분 없이 반대하는 것도 부담”이라며 “통과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내다봤다. 총리에 임명되더라도 청와대 집무실 이전,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현안들은 민주당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윤 당선인 측근과 협력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당내 일각에선 벌써부터 “대선 승리에 기여했지만 과실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흘러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적으로 여소야대 상황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에 소극적인 관료들을 다잡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야당의 협조와 부처 간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가 성과를 내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좌동욱/성상훈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