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만기 1년 이상 어음 잔액 21조...2년 3개월 만에 7배↑

입력 2022-03-23 16:07
수정 2022-03-24 09:36
이 기사는 03월 23일 16:0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금융사들이 장기 기업어음(CP) 발행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시장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어 평가손실에 민감한 자산운용사 등 투자기관들이 회사채 대신 기업어음 인수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2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금융 및 보험업종 기업의 만기 1년 이상 CP 발행잔액은 21조9900억원으로 전체 만기 CP잔액 204조5436억원의 10.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말 금융 및 보험업종 만기 1년 이상 CP 잔액 3조1150억원과 비교하면 7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금융사의 장기(만기 1년 이상) CP잔액은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늘어났다. 금융사들의 전체 CP잔액은 작년말 215조원에서 204조원대로 줄어들었으나 장기 CP 잔액은 18조원대에서 21조원대로 3조원 이상 증가했다. 장기CP는 주로 신용카드사들이 발행을 늘리기 시작했고 캐피탈사들이 뒤이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근엔 여신전문금융사 뿐 아니라 증권사들도 C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달에도 여전사들의 장기CP 발행 러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KB캐피탈이 3년 안팎의 만기로 2000억원 규모 CP를 발행했고, 21일엔 JB우리캐피탈이 2년 만기 CP 1000억원어치를 찍었다. 오는 30일에는 BNK캐피탈이 만기를 2년6개월~3년6개월로 다양하게 설정해 총 1500억원 규모 CP를 발행한다. 같은날 신한카드도 만기 3년6개월 짜리 2000억원 규모 CP를 찍는다. 이 밖에도 KB국민카드,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우리카드, 신한캐피탈 등 이달에만 9곳의 금융사가 증권신고서를 내고 장기 어음을 발행했다.

기업어음이 늘어난 것은 회사채와 유동화증권(ABS) 등의 발행 여건이 나빠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투자 기관들이 사자마자 평가손실이 나는 금융채 인수를 줄이고 있다. 기관들이 여전채 인수를 꺼리면서 채권 발행을 주관한 증권사들이 미매각 물량을 떠안기도 했다.

ABS발행도 쉽지 않다. 정부의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과 원금·이자 상환 유예조치 등으로 인한 잠재부실 우려 때문이다. 신한카드와 삼성카드 등 주요 카드사들은 3년 사이 총자산이 4조~7조원 가량 늘어났으나, ABS발행규모는 비슷하거나 소폭 줄어들었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무디스 등 해외 신용평가사들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한 한국 신용카드사 ABS의 부실화 위험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CP의 경우 회사채와 달리 보유기간 동안 시장금리에 변동과 관련한 평가 의무가 없어 투자기관들 역시 부담 없이 투자를 지속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금융사들이 자금조달 수단을 다변화한다는 차원에선 긍정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다만 일각에선 여전사들이 CP 의존도를 높이면서 금융채 일괄신고제를 우회하는 등 건전성 감독이 허술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 감독 당국은 발행사의 편의를 높이면서 자본조달 규모를 관리하고자 일괄신고제를 운영하나, 장기CP는 일괄신고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주로 사모로 발행하고 발행가격(금리)을 결정하는 수요예측을 거치지 않는 데다 유통 정보도 빈약하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CP를 발행할 때는 단기 신용등급을 사용하는데, 장기 등급이 AAA인 곳과 AA- 등급인 기업이 모두 'A1'으로 평가된다"며 "단기 자금조달 수단인 CP를 2~3년 만기 발행하는 것은 꼼수이고 투자기관의 리스크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