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임자 임명 절차가 지지부진해지고 있다.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통하는 임지원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 임기도 오는 5월에 마무리되는 등 통화정책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이들의 자리를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가 채울 경우 올해 연 1.75~2.00%까지 기준금리를 올리겠다는 한은의 정책 추진 동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6일 한은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통위 회의는 다음 달 14일, 5월 25일에 열린다. 통상 한은 총재 내정과 국회 인사청문회, 임명까지는 통상 한 달 안팎이 걸린다. 이번주께 이주열 총재 후임자 내정이 진행돼야 다음 달 14일 금통위 회의가 총재 공석 없이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의 오찬 회동이 무산된 만큼 총재 공석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만남이 무산된 배경으로 한은 총재 인사권 등을 놓고 서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 꼽힌다. 한은 출신으로는 장병화 전 부총재와 윤면식 전 부총재, 이승헌 현 부총재가 외부에서는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이들을 놓고 정책·성향 등에서 청와대와 인수위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계 인사는 "총재 인사는 새 정부 경제정책 성향을 판가름할 수 있는 상징적 자리"라며 "인수위가 한은 총재 청문회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중히 처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총재는 금통위 의장을 겸임하며 기준금리 결정회의를 주재한다. 오는 4, 5월 금통위에서 의장의 공백이 생기면 주상영 위원이 의장 직무 대행을 맡을 예정이다. 총재 공석 장기화 우려가 커지는 것과 함께 은행연합회 추천으로 선임된 임지원 위원의 임기도 오는 5월 12일에 끝난다.
총재 공백과 임 위원의 교체가 통화정책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물가 상승 압력 등에 대응해 올해 두세 차례 금리를 더 올릴 계획을 시사했다. 지난달 열린 한은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금통위 과반인 4명의 위원이 "금리인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2명은 금리인상에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종합하면 현재 금통위는 이주열 총재와 임지원 위원 등 5명이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매파로 분류된다. 그동안 금리동결을 줄곧 주장한 주상영 위원을 비롯한 금통위원 2명은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평가된다. 매파 대 비둘기파 비율이 5 대 2다. 매파인 이주열 총재와 임 위원이 모두 비둘기파 성향 인사로 바뀌면 매파 대 비둘기파 비율이 극단적으로 3대 4로 뒤집힐 수도 있다. 금리인상 흐름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총재·금통위원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성향이 한결같이 매파적으로 분류되는 만큼 이 같은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과거 보수정권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선호한 데다 예상외 인사가 발탁될 경우 비둘기파가 금통위를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경기가 불투명해진 데다 선제적으로 세 차례 금리를 올렸다"며 "물가보다 경기를 우선순위로 두고 금리를 결정한 금통위 관행을 고려하면 비둘기파가 금통위를 장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