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준 해시드 대표 "블록체인, 곧 일상이 될 것"[한국의 유니콘메이커]

입력 2022-03-13 10:17
이 기사는 03월 13일 10:1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990년대 중반에 사람들이 인터넷을 처음 접하고 나서 불과 몇 년 뒤 어떻게 됐는지 기억하십니까? 지금 블록체인 기술이 그 시기에 와 있습니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사진)는 지난 1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일상에 스며들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들이 얼마나 혁신적인지 투자를 통해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업 전문 투자사인 해시드는 특정 분야 투자에만 집중하고 있음에도 업계에서 큰손으로 불린다. 운용자산(AUM)은 4000억원에 육박한다. 지난 연말엔 2400억원 규모 '해시드 벤처투자조합2호'를 결성했다. 이 펀드엔 네이버와 크래프톤, 위메이드, SK, LG, 컴투스, F&F, 무신사, 하이브 등 쟁쟁한 기업들이 출자자(LP)로 참여했다.

2017년 설립된 해시드가 단기간에 사세를 불릴 수 있었던 건 김 대표가 가진 전문성 덕분이다. 그는 에듀테크 스타트업 '노리'를 세운 뒤 대교그룹에 매각하고, 데이팅 앱 '아만다' 개발사 넥스트매치를 공동 창업해 매각에 성공하는 등 일찌감치 경영자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과학고와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공대생답게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2015년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방한했을 때 암호화폐가 다음 세대의 혁신적인 자산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됐다. 1이더리움의 시세가 1달러에 불과할 때였다. 2018년엔 블록체인 투자 역량을 강화하려던 소프트뱅크벤처스가 그를 파트너로 영입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플랫폼 경제'가 '프로토콜 경제'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프로토콜은 일종의 중립적인 '규칙'을 뜻한다. 플랫폼에서 사업자가 마음대로 규칙을 정하고 이익을 가져가는 것과는 달리 프로토콜 경제는 기여도에 따라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투명하고 탈중앙화된 체제다. 그는 "플랫폼 경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한 직원이라도 윗선의 자의적인 규칙에 의해 보상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프로토콜 경제에서는 컴퓨터 코드처럼 완벽하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익이 분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유튜브와 같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플랫폼은 생태계 참여자들이 모두 함께 키워나가는 것"이라며 "이들에게 보상으로 스톡옵션을 부여하려면 재무팀 직원이 달라붙어 수십 개의 계약서를 써야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하지만, 블록체인을 통해 신뢰가 확보된 암호화폐라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해시드는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 △블록체인에 접근하는 전통 스타트업 △금융 생태계의 활동을 돕는 스타트업 △블록체인이나 가상경제 네트워크에서 가치를 만드는 프로젝트 등에 투자한다. 일종의 투자 철학이기도 하다.

이런 원칙을 만족시킨 포트폴리오 기업 중에는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서울거래 비상장'을 운영하는 PSX도 있다. 해시드는 PSX에 두 차례 투자했다. 김 대표는 단순히 비상장주에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 너머를 봤다. 그는 "스타트업이 만든 주식 거래 플랫폼을 금융위원회 등 국가 기관이 실험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서 블록체인의 신뢰성을 인정받은 사례"라고 말했다.

해시드는 PSX와 함께 부산에 대체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독점 체제에 대한 대응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장기증권거래소(LTSE)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도 유니콘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이들 중 국내 증시에 상장하려는 회사들은 많지 않다"며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거래소가 나오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투자한 '고위드'도 최근 관심을 쏟는 포트폴리오 회사다. 고위드는 스타트업들에 법인카드를 만들어준다.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가졌음에도 실적이 나지 않아 법인카드를 발급받지 못하는 스타트업들이 많다는 데 착안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더 큰 기회는 '데이터'라는 게 김 대표의 분석이다. 그는 "결국 이 사업을 하려면 스타트업들의 신용 데이터가 중요하고, 이는 곧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해시드는 향후에도 블록체인 분야 투자에 집중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다른 영역엔 별로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LP로 들어온 대기업들이 해시드를 통해 블록체인 모델을 배우고 널리 확산시키도록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처음 블록체인 전문 벤처펀드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너무 투자 영역이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면서 "2000년대 초 인터넷 분야 전문 투자사가 등장했을 때도 똑같은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인터넷 기업이란 말 자체를 잘 쓰지 않는 것처럼, 곧 이 분야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 점에서 김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윤 당선인이 디지털산업진흥청 설치를 공약하는 등 가상자산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한국은 디지털 강국이라는 엄청난 유산을 가졌지만 규제에 막혀 블록체인 분야 발전이 더뎌지고 있다"며 "세계적인 흐름에 뒤처지지 않게 더욱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