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5일 발생한 동해안 산불이 닷새째 이어지면서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에 육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8일 새벽엔 경북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에 불덩어리가 화선 능선부를 넘어가면서 내부까지 불이 옮겨붙었다. 산림당국은 초대형 헬기를 투입해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불 지연제’까지 소진되면서 9일에도 완전 진화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금강송 군락지까지 불줄기 넘어와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4일부터 이날 오후 6시까지 울진 1만7279㏊, 강원 삼척 1142㏊, 강릉 1900㏊, 동해 2100㏊ 등 총 2만2461㏊ 면적의 삼림이 불에 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면적(6만520㏊)의 약 37.1%다.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산불이었던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 피해 면적(2만3794㏊)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당시 산불은 강원 고성군에서 최초 발화해 9일간 지속돼 삼척, 강릉, 동해를 거쳐 울진까지 번졌다. 사망자 2명, 부상자 15명의 인명 피해도 있었다.
이번 동해안 산불로 현재까지 주택 352채 등 577곳이 소실됐다.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화재인 동해 어달산 봉수대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새벽에는 울진에서 난 산불이 금강송 군락지까지 일부 번졌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브리핑에서 “화선(불줄기)이 금강송 군락지 능선으로 약간 넘어왔다”며 “초대형 헬기 두 대 등을 더 투입해 군락지 확산 차단에 매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불길이 넘어온 즉시 진압 총력전을 펼쳐 피해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청장은 “일부 고사목(枯死木)은 탄 것 같지만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금강송 군락지는 2247㏊ 면적에 수령이 200년 넘는 소나무 8만여 그루가 자라는 곳이다. 200년 이상 자란 금강송은 각종 문화재 복원에 쓰인다.산불 지연제도 동났다진화 속도는 당초 산림당국과 소방당국이 예상한 것보다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강릉·동해 산불의 주불은 이날 오후 7시쯤 진화됐지만, 울진·삼척 진화율은 65%(오후 5시 기준)에 그쳤다.
중대본 관계자는 “강릉·동해 산불을 7일 완전 진화한 뒤 해당 지역에 투입됐던 자원들을 울진·삼척으로 돌려 총력을 기울이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며 “짙은 연무(연기와 안개)로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산불 진화가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연무가 진해서 헬기가 떴을 때 정확한 타격 위치를 찾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산림당국에선 9일에도 완전 진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산불로부터 산림을 보호하는 데 쓸 산불 지연제인 ‘리타던트’까지 소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산불 지연제는 물과 섞어 뿌리면 나무에 불씨가 달라붙는 것을 억제해 산불 확산을 지연하는 효과가 있다.“실수로 불 냈어도 강력 처벌”산림당국 등은 주불을 진화하는 대로 산불 원인 규명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산림청은 “산불 완전 진화 직후 사안에 따라 경찰청, 소방청 등과 함께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수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산불감식 전문기관인 국립산림과학원과 산불방지협회 소속 감식반 등 총 4명이 현장 기초조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산불 중 가장 큰 피해가 난 울진 지역의 경우 담뱃불에 의한 실화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전해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7일 관계부처 대국민 담화에서 “정부는 고의나 과실로 인해 산불 피해가 발생한 경우 관계 법령에 따라 강력하게 처벌할 방침”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산림보호법에 따르면 타인 소유의 산림에 불을 지른 자는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자기 소유의 산림에 불을 지른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또 실수로 산불을 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구상권 청구 등 손해배상은 별도다. 지난해 3월 농산폐기물 소각으로 인해 4.42㏊를 태운 산불 가해자는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정지은/울진=임호범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