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닐 스티븐슨이 1992년 공상과학(SF) 소설 《스노우크래쉬》에서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했다. 현실 세계에 없는 온라인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30년이 흐른 지금 인터넷·이동통신 등 네트워크 기술 발전과 함께 그래픽 기술의 획기적인 성능 향상으로 메타버스가 현실화하고 있다. 우리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가능케 하는 ‘현실 세계에 없는’ 것이 이뤄지고 있다. 게임산업을 비롯해 모빌리티, 디지털 트윈, 금융 등 다양한 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메타버스는 주로 게임에서 활용됐다. 하지만 게임 세상은 현실 세계와 완전히 동떨어진 별개의 세상일까. 사실 게임 세상에선 현실과 완전히 다른 자아를 창출해 실제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살아가기도 한다. 때론 괴리를 느끼기도 하지만, 가상과 현실이 병행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현실에 없는 세상뿐 아니라, 존재하더라도 현재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가져와 보여주는 것도 메타버스가 여는 새로운 기회다. AR 결합땐 물리적 한계도 초월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와 연결되려면 완전한 가상 요소보다는 증강현실(AR)이 특히 중요하다. 실생활에 가상의 것을 증강시키는 부분이 연결된다면 일상에서도 새로운 네트워크 세상이 열리게 된다. 로빈 윌리엄스 영국 에든버러대 과학기술학 교수 연구팀은 메타버스가 AR과 결합되는 새로운 증강 인터랙션의 출현을 예고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새로운 세상을 ‘증강 이중성(Augmented duality)’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체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메타버스가 제공해 도시 공간을 새롭게 확장하는 것이다. 메타버스는 현실에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처럼 여겨져 왔지만, 오히려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부분을 증강된 현실에서 해나갈 수 있게 됐다.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해선 ‘장소성 (Placeness)’이란 개념을 알아야 한다. 장소성이란 장소가 갖고 있는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의 복합체다. 공간의 장소성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형태를 나타내기에 도시의 공간은 중첩된 장소성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청 광장을 생각할 때 원래 목적인 시민들의 휴식 공간뿐 아니라 월드컵 응원 축제 공간, 사회적 이슈를 논의하는 공간 등 다양한 장소성으로 인지되듯이 말이다. 사회·문화적 의미 담긴 새 세상컴퓨터 분야에서 장소성은 장소가 가진 사회적인 의미(sense of place)로 종종 이야기된다. 하나의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의 경험을 하고, 또 사람마다 그 장소에 어떤 추억이 있다면 제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사람들의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의미에 따라 공간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장소의 다양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장소성이란 그 장소가 가진 물리적 의미와 사람들의 어떤 행위로 인해 더해지는 의미의 종합체다.
도시 공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장소성에 따라 사람들이 원하는 공간에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메타버스와 결합하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다. 메타버스와 AR을 활용하면 실제 공간에서 자신이 보지 못했던 장소의 다양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행자라면 기존의 AR은 단순히 그 여행지만을 보여주고 그곳에 담긴 총체적인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공간이 갖고 있는 사회적인 의미, 시간 축을 통해 다양하게 축적된 사람들의 장소성을 경험할 수 있다면 공간에 대한 이해가 훨씬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예를 들면,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장소적 발견,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장소적 발견을 각각의 새로운 메타버스 세계에 접목하면, 눈에 보이는 공간은 하나지만 AR을 통한 다양한 메타버스 세상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메타버스와 도시 공간이 만나면 하나의 공간이라도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형태의 세상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기에 그러한 새로운 세상 안에서 자기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 새로운 행위들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