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라는 형용사 [ESG 투자 이야기]

입력 2022-02-09 13:31
수정 2022-06-07 15:25
이 기사는 02월 09일 13:3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요즘 어디를 가나 ESG라는 단어를 만나게 된다. 학자는 ESG문제의 심각성을 주장하고, 사회단체는 기업의 ESG경영을 촉구하고, 정부는 ESG 관련 규제와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수익과 위험에 민감한 자본시장도 ESG투자를 외치고 있다.

이렇게 ESG가 여러 분야에서 출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ESG가 뜻하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자체가 폭넓은 개념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ESG라는 단어가 형용사라서 어떤 명사도 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SG가 형용사라고 하면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이 글에서도 그렇듯이, 지금은 ESG가 명사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이 단어는 형용사였다. ESG 관련 국제기구의 홈페이지나 위키피디아와 같은 사전에서도 ESG를 ‘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의 약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ESG라는 형용사가 수식하는 대표적인 명사에는 무엇이 있을까?

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세 가지 대상을 부를 때 ESG요소라고 한다. 우리가 그냥 ESG라고 말하며 생각하는 바로 그 개념이다. ESG요소는 좋고 나쁨의 가치를 품지 않은 중립적인 용어다. ESG요소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강조하거나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들 예컨대 기후변화, 양성평등, 회계부정 등을 일컬을 때는 ESG이슈라고 한다. ESG이슈는 ESG요소와 달리 긴장감 있는 용어다. 그런데 ESG이슈는 대부분 우리를 괴롭히는 해결과제다. 이러한 점을 강조하고 싶을 때는 ESG문제라는 표현을 쓴다. ESG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사회나 정부의 관심사가 된다.

ESG경영은 기업의 활동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경영의 접근방법을 말한다. ESG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투자를 함에 있어서 ESG경영을 잘 하는 기업이나 실물자산에 주목하는 전략을 ESG투자라고 한다.

이 외에도 ESG와 관련된 많은 용어가 있는데, 그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ESG경영이다. ESG경영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공유가치창출(CSV) 등의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예전부터 지속가능경영, 사회책임경영과 같은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다가 기업이 고려해야 할 대상을 환경, 사회, 지배구조 세 가지 요소로 명확하게 강조하면서 ESG경영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기업인가? 우리 경제에는 기업 외에도 정부, 가계 등 다양한 주체가 활동하고 있는데, 왜 ESG정치나 ESG소비는 부각시키지 않고 ESG경영만 크게 외치는 걸까? 바로 기업이 ESG문제의 주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업만이 부도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서는 생산활동을 담당하는 기업이 ESG문제의 발생지이기 쉽고, 해결을 위한 실마라도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정부는 ESG경영을 유도하는 규제와 지원을 시행하고, 가계는 소비의 선택와 사회운동을 통해 ESG경영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ESG경영을 유도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으로 ESG투자가 부상하고 있다. 기업이 자금을 자본시장에서 조달하므로 투자자가 ESG문제를 중시한다면 자연스럽게 기업도 ESG경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의 역사도 ESG경영만큼 오래됐다. 그런데 그동안 꿈쩍 않던 자본시장이 서서히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사례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회사인 블랙록과 그 CEO인 래리 핑크가 자신의 투자자와 투자대상인 기업에게 ESG투자와 ESG경영을 촉구하는 연례서신을 보낸 일, CalSTRS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연금기금과 국부펀드가 '지속가능한 자본시장을 위한 우리의 협력'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일 등이다. 지금은 대부분 금융기관의 홈페이지에서 ESG투자라는 용어를 만날 수 있고, 검색엔진에 ESG를 입력하면 ESG펀드나 ESG ETF를 화면 가득 찾을 수 있다.



투자자가 갑자기 선해진 것일까? 비록 ESG이슈에 대한 인식이 범세계적으로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국제사회나 정부의 규제와 지원이 제도화되고, 소비의 주체인 고객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ESG경영이 기업이나 실물자산의 재무적인 성과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에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투자자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야 하고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ESG문제의 해결에 기여하는 길일 뿐 아니라 수익을 증대시키고 위험을 관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실 투자자의 참여는 ESG라는 형용사가 처음 만들어진 역사와도 밀접하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범위 내에서 ESG라는 세 글자의 형용사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ESG경영을 추구하는 유엔의 조직인 글로벌컴팩트(UNGC)가 2004년 발간한 '배려하는 자가 승리한다(Who Cares Wins)'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기업의 경영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관투자자가 나서 줄 것을 촉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ESG요소, ESG이슈, ESG성능, ESG위험 등 여러 표현을 사용했다. 즉 ESG라는 형용사는 애초부터 투자라는 명사를 염두에 두고 사용된 것이다.

ESG투자가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ESG문제의 본질이나 ESG경영의 방법에 대한 논의가 무척 활발한데, ESG경영을 잘 하는 기업이나 실물자산을 선별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ESG투자를 위해서는 그것에 맞는 논의가 별도로 이루어져야 하고 ESG투자를 지원하는 ESG보고, ESG평가, ESG지수 등의 인프라도 갖춰져야 한다. 이 연재에서는 그러한 속 이야기를 차근차근 다루고자 한다. 다음 이야기는 ESG투자의 역사와 특징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