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원 규모 시장으로 평가되는 동대문은 한국의 독특한 '패션 클러스터'입니다. 반경 10㎞ 이내에서 디자인→생산→도매→소매로 이어지는 과정이 전부 일어나는 매우 집약된 형태가 강점입니다. 하지만 이런 강점을 가진 동대문에도 단점이 있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알음알음 거래처를 뚫는 데서 오는 정보 비대칭, 현금만 오가던 거래방식에서 오는 불편함, 옷가게 사장들이 직접 가서 보고 옷을 떼어와야 하는 비용 등이었습니다.
이를 전부 해결한 게 동대문 도-소매 간 B2B 플랫폼 신상마켓입니다. 요즘 모든 업의 화두가 '디지털 전환(DT)'인데, 동대문의 DT를 이뤄가고 있는 스타트업입니다. 위에 열거한 동대문의 약점을 대부분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며칠 전 540억원의 시리즈C 투자를 확정 지었습니다. 정보의 비대칭은 디지털 플랫폼화를 통해 누구나 폰으로 볼 수 있도록 해결했고, 현금결제는 신용카드, 간편결제 등을 플랫폼에 도입했습니다. 옷가게 사장이 폰으로 주문하면 사입, 검수, 직배송까지 해주는 풀필먼트도 도입했고요. 동대문 도매업자의 80%가 신상마켓을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상마켓 운영사 딜리셔스가 최근 창립 10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동대문을 K패션을 기반으로 일본 옷 가게 사장님들을 공략하겠다는 포부입니다. 사업 모델은 똑같습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동대문의 옷들을 한국 옷 가게 사장님이 아니라 일본 내 사업자들에게 공급하겠다는 겁니다. 일본에 플랫폼을 구축하고 일본 사장님들이 신상마켓을 보며 동대문 옷을 주문하면 배송해주는 거죠. 결과적으로 일본 사람들에게 동대문 K패션을 팔도록 하겠다는 목표입니다.
신상마켓이 꼽는 기회요인은 이런 것들입니다. 우선 일본에는 동대문과 같은 패션 생태계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디자인을 직접 할 소상공인 디자이너가 없고, 이를 옷으로 만들어줄 제조업자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도쿄를 중심으로 한 고가의 고급 브랜드, 유니클로 등 SPA 브랜드가 패션의 중심이라는 거죠.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1020세대를 중심으로 저렴하지만 패셔너블한 옷을 사고 싶어 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게 신상마켓의 시각입니다. 현지 플랫폼들과 협업해 이들을 공략하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거죠. 신상마켓 관계자는 "다변화하는 일본 내 수요에 비해 중저가 시장은 SPA 아니면 굉장히 종류가 적다"며 "3일이면 디자인이 바뀌는 동대문 옷을 잘 보여주게 되면 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는 구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상마켓은 일본에 집중한 뒤 중국으로 향할 계획입니다. 중국에는 동대문과 비슷한 광저우 패션 클러스터가 있지만, 고가의 동대문 패션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계산입니다. 중국 소비자들은 동대문 패션을 생산원가의 4~5배를 주고도 사려한다고 합니다. 이어 동남아, 나아가 미국 내 아시안 체형에 맞는 동대문 K패션을 공급한다는 게 신상마켓의 야심입니다.
동대문의 디지털 전환을 이끈 신상마켓은 코로나19가 막 창궐했을 무렵 황폐화된 동대문 오프라인 시장의 '구세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기존 동대문의 '페인 포인트'를 해결한 것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죠. 국내에 만족하지 않고 동대문, K패션의 세계화를 꿈꾸는 딜리셔스의 도전이 통할지 주목됩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