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가격표 붙이나 마나…'눈속임' 여전

입력 2021-12-31 16:08
수정 2022-01-10 16:23

‘1 대 1 PT(퍼스널 트레이닝) 회당 5만5000원.’

새해를 맞아 몸에 근육을 만들어 ‘보디 프로필’을 찍기로 결심한 김진수 씨(29)는 31일 이런 내용이 적힌 전단지를 보고 헬스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헬스장에서 안내받은 가격은 전단지와 딴판이었다. 전단지에 적힌 회당 5만5000원은 PT 수업 40회를 한 번에 결제할 때 적용되는 금액이었다. PT를 받으려면 헬스장 이용권도 따로 끊어야 한다고 했다. 김씨가 원하는 대로 20회 수업을 등록하면 PT는 회당 7만7000원, 헬스장 이용권료도 월 3만원을 내야 했다. 김씨는 “회당 5만5000원이라길래 20회에 110만원 정도를 예상하고 갔는데, 실제로는 이용권까지 합쳐 160만원이 넘는 가격이었다”며 “직접 찾아가 상담받기 전까지는 가격을 알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부터 체육시설 가격표시제가 시행됐지만, 여전히 소비자 가격은 ‘깜깜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중요한 표시·광고 사항 고시 개정안’에 따라 체육시설에서 의무적으로 요금체계와 환불기준을 게시하도록 했다. 소비자가 가격을 모른 채 장시간 상담 후에야 가격을 알게 되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예컨대 헬스장은 ‘6개월 등록하면 월 3만원’처럼 서비스 내용에 따른 구체적 가격을 매장 안에 써붙여야 한다. 광고용 전단지와 현수막도 마찬가지다.

적용 대상은 헬스장과 수영장, 종합체육시설이다. 종합체육시설은 체육시설법에 따른 17가지 체육시설업 가운데 두 종류 이상의 체육시설을 한 장소에 설치한 시설이다. 골프연습장과 헬스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경우가 해당한다. 미용실과 학원은 앞서 2013년, 2016년부터 이 같은 가격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된 지 1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가격표시제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날 찾은 서울 천호동 헬스장 8곳 중 매장 안에 요금 체계와 환불 기준을 게시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6곳은 가격표시제가 시행됐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대형 체인 헬스장의 직원 한모씨는 “가격을 표시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아직 게시물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공정위는 6개월 계도기간을 두고 제도를 홍보할 계획이다. 공정위 소비자정책국 관계자는 “당초 지난 9월부터 개정안을 시행하려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시행 시기를 세 달 미뤘다”며 “세 달 전부터 고지된 내용임에도 현장에서는 모르는 사업자가 많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가격표시제 시행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격 출혈 경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주형 대한실내체육시설 총연합회 대변인은 “소비자가 업장을 방문해 트레이너의 전문성과 시설, 수업내용을 알아보기 전에 가격만으로 평가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PT 가격이 상황에 따라 바뀌는데 이를 정확히 게시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천호동의 한 헬스장 직원은 “PT 가격이 시기와 이벤트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명확히 표기하기는 쉽지 않다”며 “간판에 가격을 적은 업체는 간판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격을 고시하는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원과 교습소는 2016년부터 외부에 수업료를 게시하도록 했지만 실제로 지키는 학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영세한 업체들이 제도를 모르는 경우도 있고, 실질적인 단속이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내 학원은 2만5000여 개에 달한다.

미용실 역시 2013년부터 옥외 가격표시제를 시행했지만 형식적으로 최저 가격만 표시한 후 디자인, 머리 길이, 손상된 머릿결 등을 이유로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