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방역패스(미접종자의 다중이용시설 이용 제한)’ 유효기간을 한국(6개월)보다 긴 백신 접종 후 9개월로 정했다. 우리나라가 부스터샷(추가접종) 기간을 더 짧게 잡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똑같은 백신을 쓰는데 한국과 유럽이 방역패스 유효기간을 달리 설정한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의료계에선 코로나19 백신을 비교적 여유 있게 확보하고 있는 데다 최대한 접종 간격을 촘촘하게 해 방역 효과를 끌어올리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EU 디지털 코로나19 증명서’ 유효기간을 백신 접종 후 9개월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의 지침과 나라별 백신 접종 프로그램을 재설정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감안한 제안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약발’이 통하는 기간을 6개월로 본 데 비해 유럽은 이보다 긴 9개월로 판단한 것이다.
아직까지 방역패스 유효기간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다만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코로나19 주요 백신 접종으로 생성된 중화항체가 얼마나 몸속에 남아있는지에 관한 연구 결과가 각국의 판단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20~59세 성인을 대상으로 주요 백신 접종 후 중화항체가 시간 흐름에 따라 얼마나 남아있는지 분석한 결과, 화이자 2회 접종 시 5개월까지 중화항체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화항체는 바이러스를 중화시켜 예방 효과를 갖는 항체를 말한다.
이기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은 26일 유효기간 6개월의 근거로 “(60세 이상) 어르신은 기본 접종 4개월 뒤 접종이 가능하고 50대는 5개월 뒤 추가 접종이 예정돼 있다”며 “추가 접종하는 데 한 달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6개월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기본 접종 후 추가 접종에 한 달 정도가 소요되는 것을 감안했다는 의미다.
물리적 소요 기간뿐 아니라 비교적 여유로운 백신 확보 물량도 고려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날 기준 보유 백신은 화이자 842만7000회분, 모더나 546만9000회분, 얀센 157만1000회분, 아스트라제네카 80만5000회분 등 총 1627만2000회분이다. 내년에 쓸 화이자 백신 3000만회분도 최근 구매 계약을 마쳤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