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저명한 동양사학자 카를 비트포겔은 중국 역대 왕조 가운데 요(遼), 금(金), 원(元), 청(淸)에 ‘정복 왕조’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족 왕조가 사방의 이민족 정권을 책봉하고 조공을 받는 전통적 화이(華夷)질서를 뒤집은 공통점이 있어서다.
《전사들의 황금제국 금나라》는 정복왕조 중에서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국내의 당·송 시대 및 북방민족 연구자가 대거 참여했다. 그간 국내의 금나라 연구가 고려와 금나라 간 관계사 중심으로 이뤄졌던 한계에서 벗어나 금나라 자체를 대상으로 한 본격적인 연구서다.
거란족의 요나라와 함께 금나라는 이민족이 한족 황제를 책봉하고 조공을 바치도록 한 이른바 ‘역조공’을 시작한 나라다. 금나라는 특히 한족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첫 국가로 주목된다. 금나라 이전의 북방 왕조들은 정통 왕조가 되기 위해 한족의 조상을 훔쳐 왔다. 선비족이 세운 북위와 거란은 중국의 전설상 제왕인 황제 헌원의 후손을 자처했다.
하지만 금나라의 통치자들은 “이적과 화하는 바뀔 수 있다(夷夏可變)”는 논리로 종족적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비한족 정권도 정통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의 변화를 이끈 것이다.
이처럼 금나라가 중국사의 흐름 속에서 독특한 위상을 구축한 것 외에도 국내에선 한국사나 한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면서 일찍부터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금(金)’이라는 국명의 기원, 금나라 시조 ‘함보(函普)’의 연원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대목이 많았기 때문이다.
금이라는 국명의 기원과 관련해선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청나라 때 자료인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 “금이 건국할 때 신라 왕의 성씨인 김씨에서 성을 취해 나라 이름을 정했다”고 언급한 것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또 《고려사(高麗史)》 《금사(金史)》 《송막기문(松漠紀聞)》 등에서 금의 시조 함보를 신라 혹은 고려 출신으로 다룬 것은 일찍부터 한·중·일 학자 간에 신뢰성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책에선 각종 사료 분석과 여진어 작명법, 신라의 인칭 접미사인 ‘보’의 활용 등을 고려할 때 함보가 신라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한다.
그간 금나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팽창주의적 민족주의에 영합한 ‘사이비 역사학’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금나라의 모습을 객관적·입체적으로 살펴본다는 점에서 현대의 욕망이 투사된 과거가 아니라 실재했던 과거를 직시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에 의미가 작지 않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