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암호화폐 시장의 기본 질서를 정립하는 이른바 ‘가상자산법’을 제정하기 위한 국회 논의가 첫발을 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6일 가상자산법안 관련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 의견을 들었다. 국회에는 13건의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법을 통해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제대로 된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상자산 거래 규모를 고려할 때 투자자 보호가 가장 먼저 도입돼야 할 나라는 한국”이라며 “투자자 보호장치가 마련되면 장기적으로 국내 블록체인 기술의 경쟁력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암호화폐거래소들은 상장과 상장폐지를 임의로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가 정보를 얻거나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최화인 금융감독원 블록체인발전포럼 자문위원은 “가상자산을 금융투자상품에 포함해 다단계, 유사수신, 시세조종, 내부자거래, 미공개정보 이용, 일방적 상장폐지 등으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센터장은 “정부가 특정 소득에 대해 과세해 국가 재원으로 쓰려면 해당 소득을 발생시키는 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납세자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센터장은 의무공시 제도 도입, 불공정거래 금지,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진입·행위·건전성 규제 등의 규정을 법안에 담을 것을 제안했다.
다만 성급하게 가상자산법을 만들면 오히려 산업 발전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내 시장에 규제가 너무 많아지면 기업과 투자자의 ‘탈(脫)한국’ 현상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섣불리 규제를 도입하면 의도치 않게 미래 산업의 발목을 잡을 위험이 있다”며 “특정금융정보법 시행의 효과를 지켜보면서 추가 보완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정무위 소속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도 “가상자산의 개념이 빠르게 확장하고 있고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며 “분초를 다퉈 속도전으로 처리해야 할 일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