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기 용인시청 시청각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입주하려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한자리에 모였다. 기업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기 위해 용인시가 마련한 자리였다.
각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생산라인 신·증설에 필요한 각종 규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쏟아냈지만 속 시원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진땀을 빼며 “지방자치단체의 재량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폐수처리시설 설치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반도체 미세공정의 핵심 소재인 극자외선(EUV) 펠리클을 개발 중인 에스앤에스텍은 “연도별로 폐수를 얼마나 처리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사업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용인테크노밸리산업단지에 입주한 이 업체는 자비로 폐수처리시설을 짓고 있다.
용인시는 산업단지의 폐수 처리 총량을 환경부가 정하기 때문에 시에서 마음대로 늘려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애초 4000t가량의 폐수처리시설을 계획했지만 환경부가 물을 많이 쓰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일반산업단지와 같은 기준을 적용해 1100t만 승인해줬다”며 “이마저도 두 단계로 나눠 건설해야 해 현재는 700t 용량만 준공됐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환경부가 승인한 1100t으론 용인테크노밸리에 들어서는 120개 입주사의 물량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에스앤에스텍 한 곳이 처리해야 하는 폐수량만 250t에 달한다.
신소재 개발에 필요한 화학물질 사용 허가를 받는 것이 힘들다는 의견도 나왔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주관 부처와 공기관 세 곳에서 각각 허가를 받아야 해 번거롭고 오래 걸린다”며 “반도체 연구에서는 몇 달만 허비해도 글로벌 경쟁에서 완전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반도체 연구용 화학물질의 사용 승인을 한 달 안에 끝낼 수 있는 패스트트랙을 검토 중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등 부처 간 이견이 커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다.
산업단지로 들어가는 도로 정비 등 인프라 문제도 안건으로 올랐다. 여러 기업이 “산업단지로 진입하는 도로가 열악하고, 교차로가 없어 사고가 우려된다”는 의견을 쏟아냈다. 용인시는 “도로를 새로 닦거나 교차로를 설치하려면 인근 군부대, 한국도로공사, 관할 경찰서 등과 협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몇 차례 교차로 설치를 시도했지만 협의가 원활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지자체에서는 산업단지 개발을 가능한 한 빠르게 하고 싶지만 중앙 정부의 허가 없이는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며 “국가 차원의 원스톱 행정지원 체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용인=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