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죄’에 걸리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우리 경쟁당국이 좀 앞장서서 나가달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이 13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결합 심사를 검토 중인 공정거래위원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정부 산하기관인 산업은행이 다른 부처의 업무와 관련해 공개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 회장은 이날 취임 4주년 기념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합병은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생존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조치”라며 “(공정위가) 그런 시장과 산업의 관점에서 (결합 심사를) 긍정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아마존 페이스북 등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려 할 때 미국 경쟁당국은 (자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냐”며 “그런데 우리(공정위)는 그냥 기다리고 앉아서 딴 데 하는 걸 보고 하자는 기분이 들어 섭섭하고 유감스럽다”고 했다.
산업은행과 한진칼이 지난해 11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발표하고 두 달여 만인 올해 1월 공정위에 기업결합신고서를 제출했으나 8개월 가까이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공정위는 심사를 위해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나 6월 초였던 기한이 돌연 10월 말로 연장됐다. 공정위가 이처럼 미적거리는 동안 오히려 터키 필리핀 태국 등 다른 나라에서 먼저 허가를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은 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간 결합 심사가 EU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공정위 역할론’을 주문했다. 그는 “조선업과 항공업 합병으로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탐내겠다는 얘기가 아니지 않느냐”며 “글로벌 경쟁이 워낙 심해 그럴 만한 여건도 아닌데 공정위가 전향적으로 검토해 다른 나라 경쟁당국 설득도 좀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현대중공업과 합병을 반대하는 대우조선해양 노조에 대해서도 “EU 심사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강력히 경고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노조 뜻대로 EU 합병 승인이 좌절되면 대우조선을 스스로 책임질 자신이 있느냐”며 “자율에는 책임이 수반되는데 노조와 지역사회의 책임 없는 주장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대우조선도 그렇고 아시아나항공도 그렇고 국내에서 도와주는 데가 없어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이 회장은 HMM 매각에 대해선 “해양진흥공사(지분율 3.44%)를 중심으로 경영권 지분을 유지하고, 산은 보유 주식(24.96%)은 점진적 매각을 통해 해소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