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무시하는 R&D혁신법"…1인 시위 나선 인문·사회 교수들

입력 2021-08-27 17:45
수정 2021-08-27 23:51
정부가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통합 관리하려는 취지로 올해 초 시행에 들어간 ‘국가연구개발혁신법(혁신법)’이 인문·사회 분야 교수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법이 과학기술 분야 R&D 관행 등에 기반해 제정되다 보니 인문·사회 분야 연구가 위축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이유에서다.

27일 학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인문·사회계열 학술단체인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인사총)를 중심으로 혁신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사총은 최근 ‘혁신법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혁신법은 부처별·사업별로 다르게 운영되는 복잡한 R&D 규정을 통합해 불필요한 행정적 부담을 줄이고,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올 1월부터 시행됐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는 모든 사업이 대상인 만큼 인문·사회 분야 연구도 적용 대상이 됐다.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은 혁신법이 인문·사회계 연구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목한다. ‘R&D 과제에 참여하는 연구자는 연구노트를 작성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제35조 제2항이 대표적이다.

연구노트는 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매일의 연구과정과 결과를 기록하는 노트다. 언제 실험을 했고, 무슨 도구를 사용했는지 등을 쓰는 것이다. 위행복 인사총 회장(한양대 중국학과 교수)은 “매일매일 어떤 책을 몇 페이지 봤는지 기록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며 “인문·사회 분야 연구뿐만 아니라 순수 수학 연구에도 맞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기술 분야에 맞춰진 획일적 기준을 모든 연구 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혁신법의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인문·사회계에서 나오는 문제 제기에 공감하고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다만 국가재정을 지원받는 R&D 사업에 통합된 기준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만든 법이기 때문에 인문·사회계만 제외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연구노트를 연구보고서로 대체하거나 인건비 사용 기준을 유연하게 하는 등 혁신법으로 인한 인문·사회계의 고충을 최대한 해소할 방침”이라며 “예외적으로 학술진흥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현행 법 조항을 활용하도록 안내해 인문·사회계열이 소외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인사총은 혁신법 자체가 인문·사회 분야 연구와 결이 맞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법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준비하고 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