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향후 3년간 단행할 240조원의 투자 중 상당액을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반도체 분야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글로벌 1위인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14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이하 D램과 200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시스템 반도체 사업 육성전략의 키워드 역시 ‘기술’이다. GAA(게이트올어라운드) 등 3나노 이하 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 신기술을 조기에 상용화해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좁히기로 했다.
“메모리 우위 공고히 할 것”
삼성전자 등 주요 삼성 계열사가 24일 공개한 중장기 투자계획에서 가장 첫머리에 언급한 사업은 반도체였다. 삼성 측은 발표자료를 통해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비상 상황’에 처해 있으며 반도체는 한번 경쟁력을 잃으면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투자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벌이고 있는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활로를 찾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사업별 전략도 언급했다. 메모리는 단기 시장 변화보다 중장기 수요 대응에 초점을 두고 투자를 지속할 예정이다. PC용 D램처럼 수요와 가격이 들쑥날쑥한 제품보다 긴 호흡으로 움직이는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기술은 물론 원가 경쟁력 격차를 다시 확대해 ‘절대 우위’를 공고히 하겠다고 못 박았다.
시스템 반도체는 기존 투자 계획을 적극적으로 조기에 집행하기로 했다. 기존 모바일용 제품 중심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제품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관련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K-반도체 벨트 전략 보고대회’에서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171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공정 연구개발·시설투자를 가속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로 삼성전자의 투자 규모가 더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을 비롯해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만 향후 3년간 최소 50조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미래 메모리 전략의 핵심은 ‘AI’삼성이 꼽은 반도체 이외의 먹거리는 차세대 통신과 AI, 로봇, 슈퍼컴퓨터 등이다. 삼성은 세계 최초로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에 성공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통신 분야 선행기술을 연구 중이다. 5G 분야에 구축한 리더십을 6세대(6G)에서도 지키겠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통신망 고도화와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AI와 로봇 등도 주력 투자처로 꼽았다. AI 분야에서는 세계 거점 지역에 포진한 ‘글로벌 AI센터’를 통해 선행 기술을 확보하고 AI 기술을 활용한 기기를 확대할 방침이다. 로봇 사업의 목표는 ‘로봇의 일상화’다. 다양한 형태와 기능의 제품을 개발해 로봇을 소비자의 일상 속 제품으로 만들겠다는 설명이다. 그 밖에 삼성은 슈퍼컴퓨터, 차세대 디스플레이, 고밀도 배터리, 전고체 전지 등에도 대대적인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이날 공개한 것은 ‘숫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이날 온라인으로 개최된 반도체 학회 ‘핫 칩스’에서 PIM(Processing-in-Memory) 기술을 D램 메모리에 적용한 다양한 제품군과 응용사례를 소개했다.
PIM은 CPU(중앙처리장치)는 연산, D램은 저장을 담당한다는 기존 컴퓨팅의 상식을 깬 기술이다. CPU의 고유 기능인 연산 작업의 일부를 D램에서 처리하는 방법으로 컴퓨팅의 병목 현상을 줄여준다. CPU가 맡고 있던 20개 업무 중 10개를 1개씩 D램에 나눠준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삼성전자는 PIM 기술로 D램과 AI 엔진을 연결한 모듈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D램 모듈에 있는 버퍼칩에 AI 칩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성능이 두 배 개선된다. 회사 측은 서버나 개인용 PC뿐 아니라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에도 PIM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