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아프가니탄 통치가 본격화된 첫날인 16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거리에서 여성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날 가디언에 따르면 카불의 여성들은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았거나 남성 보호자 없이 외출했다는 이유로 탈레반 조직원들에게 폭행 당할 것을 두려워하며 집 안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몇주간 아프가니스탄의 일부 지역에서 탈레반 조직원들과 강제로 결혼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탈레반은 과거 여성들의 부르카 착용을 강제했다. 현재까지 부르카 착용과 관련한 공식 지침은 내리지 않은 상태다. 다만 카불의 서쪽 지역에선 탈레반이 한 모스크의 확성기를 사용해 '부르카를 착용하라'고 안내했다고 전해졌다.
이때문에 카불 여성들은 목숨을 걸고 부르카 구매에 나서고 있다. 탈레반이 떠난 20년 동안 부르카를 착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카불 여성들은 현재 부르카를 지니고 있지 않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네긴은 가디언에 "부르카는 내게 노예제도의 표시였다"면서 "하지만 요즘은 목숨을 구하려면 부르카를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르카 없이 외출하는 여성들은 탈레반의 표적이 되고 있다.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구하려 나간 한 중년의 여성은 탈레반이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을 밀치며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목격했다. 또 탈레반이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가는 것을 봤다고 전해졌다.
여성의 경제 활동이 가로막힐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과거 탈레반은 여성의 경제 활동과 교육도 금지했다. 탈레반이 지난 15일 "히잡(머리카락만 가리는 스카프)을 쓴다면 여성이 학업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여성 혼자 집 밖에 나서는 것도 허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상당수가 이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은신 중인 한 여성 언론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기자들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탈레반이 우리를 발견할까봐 두렵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이어 "탈레반이 우리를 살려준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를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혼자 사는 여성인 나에게는 굉장한 어려움"이라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