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매운맛을 대표하는 청양고추의 종자(씨앗) 소유권은 독일 바이엘에 있다. 원래는 토종 품종이었지만 소유권을 갖고 있던 중앙종묘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미국 세미니스에 팔았는데 몬산토 등을 거쳐 지금은 바이엘이 주인이다.
청양고추를 심으려면 바이엘에 씨앗값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양파, 양배추는 일본 종자 품목 비중이 80%가 넘고 고구마도 절반에 달한다.
정부가 국산 종자 개발을 지원하는 GSP 사업을 시작한 배경이다. 2013년 시작된 이 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국내 종자개발 회사들이 최근 속속 신품종을 내놓고, 유통사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매입하면서 국산 품종 판매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 지원 덕분에 종자 개발 회사들은 장기 프로젝트 진행이 가능해졌고, 유통사들의 매입 보장으로 농가들 또한 외국 품종을 국내 품종으로 바꿀 수 있었다. 농우바이오 관계자는 “양파 종자 하나를 개발하는 데만 20년이 넘게 걸리고, 농가에 새로 나온 국산 종자를 판매하는 것 또한 일본 종자의 아성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라며 “정부와 유통사의 도움으로 개발과 전파 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홍산마늘도 국산 종자 개발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마늘은 종자의 약 80%가 중국과 스페인 등에서 수입된다. 매년 마늘 종자를 수입하는 데 드는 돈은 100억원이 넘는다. 이마트는 지난해부터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국산 종자 홍산마늘 판매에 나섰다. 확보한 물량 50t이 빠르게 ‘완판’되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홍산마늘 판매를 늘려나가기로 했다.
종자 연구 과정에서 1~2인 가구 증가와 젊은 층 입맛을 고려한 것도 ‘K종자’ 판매가 늘어난 요인이다. 홈런 양배추 품종은 700g 내외의 1인용 소형 양배추로 개발됐다. 양이 많아 보관 중에 상해버리는 일반 양배추의 단점을 없앤 것이다. 홈런 양배추는 인도 러시아 중국 등으로도 수출되고 있다. 라온 파프리카 또한 샐러드 등으로 생식을 많이 하는 점에 착안해 개발한 품종이다. 과육이 두껍고 수박과 비슷한 10브릭스 정도의 강한 단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라온 파프리카는 높아진 인기를 기반으로 멕시코와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베니하루카, 안노베니 등 일본산이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고구마도 호감미, 단자미, 진율미 등 대체 품종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종자 수입 가격이 반영되지 않으면서 가격도 낮아졌다. 이마트에서 판매되는 일본 종자 양파는 1.8㎏에 3500원 정도지만 K-스타 양파는 2400원 선이다. 홍산마늘도 외국종 일반 마늘에 비해 가격이 약 20% 저렴하다.
국산 종자 연구는 가속화하는 추세다. 국립종자원에 따르면 전체 품종보호출원 건수 중 내국인의 신청 비중은 2018년 77.1%에서 지난해 88.2%로 높아졌다. 그만큼 국산 종자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 종자업체 관계자는 “수출용 종자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며 “향후 종자 수출 또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