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비스포크 시리즈는 총 360개의 색으로 제작한다.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색상을 조합한 비스포크 겉면 패널 제작사 중 한 곳이 컬러강판 제조 전문기업인 아주스틸이다. 이학연 아주스틸 대표는 “일반 페인트는 열을 가해서 굳히는데 이 경우 색상 자체가 약간 노르스름하게 변하면서 금속 재질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 사라진다”며 “삼성전자와 협업해 자외선을 이용한 박막코팅 기술(UV코팅)을 개발했고 그 결과 1마이크로미터 정도로 얇으면서도 선명하게 색상을 입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구현해 삼성 비스포크 시리즈에 적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95년 설립된 아주스틸은 경북 구미의 대표적 중견기업이다. 철강 유통업으로 시작한 이 대표는 창립 초기 가전제품 회사들이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던 LCD TV용 케이스 개발에 뛰어들면서 기틀을 잡았다. 구미공단에서 LCD TV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어날 무렵이다.
아주스틸은 수년간 연구개발 끝에 LCD TV 전·후면 케이스를 직접 생산해 LG전자에 납품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아주스틸은 OLED TV에 들어가는 케이스도 전량 공급했다. 현재는 연간 500만 대 이상의 케이스를 제작하고 있다. 이후 각종 컬러강판 생산 기술을 확보했다.
아주스틸은 컬러강판 제작 시 활용하는 잉크젯 인쇄, 실크프린팅 기술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철판 위에 각종 무늬를 ‘롤투롤(role to role·두루마리 형태 연속 인쇄)’ 방식으로 인쇄하는 기술을 통해 기존 시트바이시트(sheet by sheet·낱장 인쇄) 기술에 비해 20배 이상 생산속도를 높였다.
기술력에 자신감이 생긴 아주스틸은 인건비 경쟁 때문에 해외로 내보낸 생산설비를 국내로 들여왔다. 아주스틸은 필리핀 마닐라 사업장을 정리하고 김천산업단지에 6만6000㎡ 부지 컬러강판 생산 공장을 최근 준공했다. 스마트 공정을 도입한 최첨단 공장이다. 육안 검사를 대체하는 인공지능(AI) 자동검사기가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기존에는 제품이 완성되고 나서야 사람이 한 장씩 제품을 검수해 뒤늦게 불량을 발견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이젠 실시간 비전 검사를 통해 불량을 바로 발견하면 라인을 멈추고 조치를 취해 폐기율이 대폭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아주스틸은 컬러강판 기술을 바탕으로 건축 내·외장재 시장에도 진출했다. 일본 도쿄에 있는 멘션에 아주스틸의 컬러강판이 2.5㎢가량 들어갔다. 도쿄올림픽 이후 선수촌 아파트 일반분양 리모델링 공사에도 진입할 예정이다. 공급 물량은 5㎢ 이상이다. 이 대표는 “벽돌과 타일 대신 철판을 갖고 조립식으로 벽을 세우는 건식 공법이 세계적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공사 기간이 줄어들어 근로시간 단축 문제와 환경 문제 등에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주스틸은 지난해 매출 5697억원을 올렸다. 올해는 1분기 매출만 174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44.2% 증가한 수치다. 다음달 유가증권시장 상장도 준비 중이다.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은 건축 내·외장재 생산설비 및 디지털 프린팅 기술 혁신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전통 제조업도 기술을 개발하고 공정을 개선하면 얼마든지 혁신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끊임없는 변신을 통해 제조업이 사양산업이 아니라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