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세계 1위인 중국의 CATL은 상하이에 연 80GWh 규모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회사 전체 생산능력(연 69.1GWh)을 넘어서는 규모다. 세계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 공급할 배터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에선 보고 있다. 상하이에 테슬라 생산공장이 있고, 이 정도 물량을 한꺼번에 받아줄 곳은 테슬라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K배터리는 뛰고 있는데, C배터리(차이나 배터리)는 날고 있다”고 했다. K배터리, 세계 1위 입지 흔들
배터리는 원래 일본 기술이었다. 전기차 배터리의 표준이 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1991년 일본이 처음 상용화했다. 하지만 이내 한국이 일본을 잡았고, 중국도 곧바로 따라붙었다. 지난해 한·중·일 3국의 세계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95%. 이 가운데 한국이 44.1%로 1위다. 중국 33.2%, 일본은 17.4% 수준이다.
올 들어 판도는 급격히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 세계 전기차 판매의 절반 가까이가 중국에서 이뤄지는데,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전기차 보급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 배터리 업체가 집중적인 혜택을 받고 있다. 올 들어 5월까지 CATL BYD 궈시안 등 중국 기업의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00%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K배터리 성장률이 100%대 수준이던 것을 감안하면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한때 CATL을 제치고 1위에 올랐던 LG에너지솔루션 점유율은 올 들어(1~5월) 23.1%까지 떨어졌다. 반면 CATL은 31.2%로 격차를 벌렸다.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사업에 속속 뛰어드는 것도 K배터리에 큰 위협이다. 작년 9월 테슬라가 배터리 공장을 내년까지 짓겠다고 ‘내재화’를 선언한 데 이어, 올 3월엔 폭스바겐이 자체 배터리 생산 계획을 밝혔다. 공장 6개 중 일부는 자신들이 지분을 보유한 스웨덴 노스볼트가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나서는 등 차세대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배터리 소재 분야는 이미 ‘게임’이 끝났다. 핵심 소재인 양극재의 한국 점유율은 19.5%로, 중국(56%)에 한참 뒤진다. 음극재 점유율은 8.3%에 불과해 중국(70.9%)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중국은 전해액(65.3%), 분리막(51.6%) 등도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LG, 스마트팩토리 기지 건설독주채비에 나선 중국과 미국·유럽 완성차 업체의 견제로 ‘샌드위치 신세’에 몰린 한국 기업들은 생산능력 확충과 미국시장 공략, 신기술 선점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K배터리’ 3사의 작년 말 생산능력은 연 180GWh 수준이다. 이를 2023년까지 2.4배인 430GWh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해외생산 거점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GM과 합작법인을 세워 두 개의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고, 이와 별도로 두 개의 자체 공장까지 세우기로 했다. 투자금액이 7조~8조원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 또한 미국 조지아주에 두 곳의 배터리 공장을 내년 완공한다. 또 포드와 합작 형태로 대형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삼성SDI 역시 미국 내 배터리 공장 투자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10%대 수준이나, 중국을 제치고 최대 시장이 될 것”으로 업계에선 전망한다. 미국은 중국 배터리를 견제하기 위해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기술 선점을 위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오창 2공장을 스마트 팩토리 전초기지로 육성한다고 발표했다.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위한 설비를 구축하고, 새로운 기술 공정을 시험해 해외 공장에 전파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전 R&D 캠퍼스에 연구동을 추가로 짓고, 마곡과 경기 과천 등에 있는 연구소에서 리튬황, 전고체 배터리 같은 차세대 배터리 연구에 집중키로 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