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73)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2)이 각각 참석하는 이른바 ‘사법농단’ 관련 재판은 오후 6시를 넘겨 진행되는 경우가 잦다. 재판 도중 쉬는 시간도 짧다. 쟁점 사안들도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만큼 당사자는 물론 관계자들도 극도의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재판은 많게는 1주일에 세 번까지도 열린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 초기에는 검찰이 입수한 USB 속 파일 1000여 개를 일일이 법정에서 열어 검증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차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증인 대다수가 현직 판사인 데다 법원 내부가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재판인 만큼 한마디, 한마디를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피고인뿐만 아니라 재판부와 검찰의 피로감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여름에는 재판이 밤 11시를 넘겨 진행되자 양 전 대법원장이 “더는 체력이 남아 있지 않다. 퇴정 명령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재판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데는 지난 2월 있었던 법원 정기인사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9년 3월부터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을 맡아오던 박남천 부장판사가 2월 인사 때 서울동부지법으로 자리를 옮겼다. 법원 내부에선 “박 부장판사만큼 직권남용 법리에 해박한 사람이 없는데 안타깝다”, “후배 판사들이 참고할 만한 귀한 판결문이 나올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은 임 전 차장 재판보다 진행이 많이 됐기 때문에 올해 안에 1심 선고가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런데 대법원이 ‘마무리’만 하면 되는 박 부장판사를 지난 2월 전보시킨 반면 ‘갈 길이 구만리’인 임 전 차장 재판부는 서울중앙지법에 남겨 “대법원이 사법농단 사건의 선고를 속도조절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최근 있었던 검찰 직제개편으로 종전 서울중앙지검 특별공판1팀과 2팀이 담당하던 사법농단 및 삼성 관련 사건 재판들은 모두 서울중앙지검 공판5부에서 맡게 됐다. 비(非)직제였던 팀을 직제부서로 배치한 만큼 공소유지에 대한 검찰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신임 공판5부장은 전 특별공판2팀 팀장이자 박영수 특검의 파견검사였던 김영철 부장검사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