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성장주 대세론’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최근 조기 긴축에 나설 것임을 잇달아 시사한 여파다. Fed의 긴축은 실물경기 둔화를 촉발하는데, 이는 결국 인플레이션 우려 해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성장주를 저가 매수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반기 내내 잠잠했던 것이 무색하게 성장주를 ‘안전지대’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인터넷 등 실적이나 현금 흐름이 좋은 성장주 위주로 투자하되 장기적으로는 성장 스토리가 확실하고 미래에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종목을 담으라고 조언했다.
“현금 흐름 좋은 성장주부터 매수”네이버를 제치고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3위에 오른 카카오는 21일 오전 장중 52주 신고가를 경신하며 한때 시가총액 70조원을 돌파했다. 신승진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카카오 주가가 선전하는 표면적 이유는 자회사 기업공개(IPO)에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난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기대 인플레이션 하락에 따른 성장주 강세 흐름을 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까지 인플레이션 기대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소재·산업재 등 경기 민감주는 부진한 모습이다.
이날 주요 증권사가 내놓은 투자전략 보고서의 공통 화두는 ‘성장주 투자전략’이었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하반기부터는 물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데다 미국 실업률(5월 5.8%)이 아직 코로나19 이전 실업률(3.5%)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가치주보다는 성장주에 우호적인 환경”이라며 “지금은 성장주를 공략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성장주를 골라 투자해야 할까. 대신증권은 ‘바이든 수혜주’를 주목했다. 문남중 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인프라 투자 중 절반을 차지하는 친환경 에너지 산업이나 정보기술(IT) 업종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단기 투자자들은 현금 흐름이 좋고, 이익 전망치가 좋은 성장주부터 매수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이은택 KB증권 주식전략팀장은 “위험자산 선호 양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선 현금 흐름이 확실한 성장주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미디어 업종이 강세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문종진 교보증권 연구원도 “최근 성장주가 반등 흐름을 보이는 건 장기 성장성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라 실적 전망치가 상향되면서 밸류에이션이 매력적 구간에 진입했기 때문”이라며 “인터넷이나 바이오, 2차전지 등 성장 업종 중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을 선별해 담을 것”을 권했다. 성장주를 향한 다양한 시선장기 투자한다면 미래에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을 고르는 게 낫다. 이은택 연구원은 “‘성장주가 얼마나 더 갈 수 있겠냐’는 질문을 뒤로하고 미국에선 10년 넘게 성장주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며 “애플이 고점이라 생각했을 때 바이오 업종이 고개를 들었고, 바이오 이후엔 아마존과 페이스북이, 그 이후엔 테슬라와 엔비디아가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술 혁명은 어느 한 산업이 아니라 여러 산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며 “장기 투자한다면 올여름이 성장주 저점 매수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성장주 vs 가치주’의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있다. 신승진 연구원은 “이분법적 구분보다 실적 대비 현 주가 수준(밸류에이션)에 대한 파악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급등한 성장주를 추격 매수하는 것보다 성장 가능성 대비 주가 상승폭이 높지 않은 종목을 사는 게 낫다는 것이다. 자동차나 2차전지 업종이 이에 해당한다. 향후 경제활동 재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미디어·엔터나 면세 업종도 추천했다.
가치주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날 유일하게 ‘가치주 장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나타내면서 오히려 Fed의 긴축 압력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가치주 대세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 재개 수혜주와 가치주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이 성장주보다 높다”며 “당분간 변동성은 확대되겠지만 경기 회복에 대한 신뢰가 높은 만큼 실적 측면에서 성장주보다는 가치주가 유리한 때”라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