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업계가 올 들어 중금리 대출을 앞세워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전반적인 자금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저축은행업계도 최고 금리 인하 등 외부 위협 요인에 맞서 새로운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 기반의 중금리 대출 시장을 개척하고 디지털뱅킹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혁신 노력을 지속해온 덕분이다. 중금리 대출이 실적 견인저축은행중앙회 등에 따르면 총자산 기준 상위 10개 저축은행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 합계는 293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분기(1750억원)보다 67.7% 급증했다.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의 1분기 순이익은 865억원으로 전년 동기(681억원)보다 27.0% 늘었다. OK저축은행도 395억원에서 776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저축은행 총자산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10대 저축은행의 올 1분기 총자산 합계는 50조1699억원으로 작년 말(46조2199억원)보다 4조원(8.7%)가량 증가했다. 일부 대형 저축은행 사이에서 총자산 순위 바꿈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해 말 기준 각각 4위와 5위를 기록했던 페퍼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은 올 1분기 각각 3위와 4위로 올라섰고 한국투자저축은행은 3위에서 5위로 밀려났다.
연 14~16% 수준의 중금리 대출을 확대한 게 저축은행의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중금리 대출 잔액은 2019년 4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10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까지 대출 취급 속도가 완만했지만 4분기부터 시중의 자금 수요가 크게 늘면서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다”며 “정부도 정책적으로 중금리 대출 공급을 독려하고 있는 등 전체 여신 가운데 중금리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상승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출의 질도 개선되고 있다. 1분기 상위 5대 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전 분기 대비 0.31~3.10%포인트가량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페퍼저축은행(5.7%→2.6%)과 SBI저축은행(2.93%→0.87%)은 무려 2~3%포인트에 달하는 하락 폭을 보였고 OK저축은행(7.28%→6.81%)과 웰컴저축은행(7.69%→6.23%), 한국투자저축은행(2.41%→2.1%) 등도 자산 건전성이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다. 디지털 혁신도 ‘가속 페달’주요 저축은행이 예·적금 상품 가입과 대출 등 주요 금융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등 디지털 혁신도 가속화하고 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뱅킹 이용자가 늘면서 영업점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난 1분기 기준 저축은행 영업점은 297곳으로 전년 동기 대비 5곳 줄었다. 저축은행 영업점이 300곳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SBI저축은행은 이달 초 디지털창구 시스템을 도입했다. 디지털창구 시스템이란 종이문서 대신 태블릿 모니터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금융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SBI저축은행은 고객 응대 및 부대업무 시간은 약 20%, 문서관리 비용은 80% 수준까지 절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BI저축은행은 2019년부터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업무를 표준화해 수작업에서 오는 오류를 해결하고, 15개 업무 분야에서 연간 2만5000시간을 단축하는 등 업무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결과를 냈다는 평가다.
웰컴저축은행은 지난 3월 쇼핑 기능과 자동차 시세 확인 기능을 더한 ‘웰컴디지털뱅크 3.0’을 선보였다. 웰뱅의 인공지능(AI) 기반 챗봇인 웰컴봇의 정확성을 끌어올리고 각종 서류를 영업점 방문 없이 신청·발급하는 기능도 추가했다. 오는 8월 마이데이터로 다른 금융사에서 신용정보를 가져올 수 있게 되면 맞춤형 부채관리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OK저축은행은 전사적인 디지털 전환(DT)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기존 모바일뱅킹을 전면 개편한 새로운 앱을 선보였다.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바꾸고 금융상품 정보 노출과 적합한 상품을 추천해주는 ‘개인화 기능’을 넣었다. 지난해 10월 LG CNS·뱅크웨어글로벌 컨소시엄과 계약을 맺고, 모바일 뱅킹의 핵심인 ‘차세대 시스템’ 구축에도 들어갔다.
페퍼저축은행은 신용대출보다 절차가 훨씬 복잡한 담보대출도 모바일 앱으로 받을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정비했다. 구체적으로 △주택 자동차 등 ‘담보물 한도 조회’ △담보 대출을 위한 20여 종의 서류를 비대면으로 처리하는 ‘전자서명 약정서비스’ △인터넷 등기소와 연동한 ‘자동등기 프로세스’ 등을 앱에 적용했다. 지난해 11월부터 부동산 프롭테크기업 빅밸류와 제휴해 주택 담보 산정 서비스를 고도화했다. 공공정보 기반 빅데이터와 AI를 결합해 아파트보다 가치 평가가 까다로운 다세대·연립주택의 담보 가치도 자동 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보다 디지털 뱅킹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이를 중·저신용자에게 금리 혜택으로 제공하는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