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눈에 띄는 보도자료를 하나 발표했습니다. 공매도 재개 한 달을 맞아 주식시장을 점검했는데, 공매도와 주가 하락과의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금융당국은 “코스피지수는 공매도 재개 직전 거래일(4월 30일) 대비 2.4% 상승했다”며 “공매도가 경기 회복세 등 양호한 환경에서 원활하게 안착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내용만 눈에 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도자료 첫 페이지에는 요점별로 내용이 요약돼 있었는데, ‘안정적’ ‘원활하게’ ‘투명하게 ’등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파란색으로 표시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매도와 주가 간 유의미한 관계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문장은 ‘은·는·이’를 제외하고 전부 파란색으로 칠했습니다. 공매도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금융당국은 지난 한 달간(5월1일~6월2일) 일평균 공매도 거래대금이 6882억 원으로 과거 대비 증가했으나 상승폭은 크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전체 거래대금이 과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기 때문에 공매도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한 달간 일 평균 공매도 비중은 2.71%으로 2019년(비중 4.52%)과 2018년(4.56%) 대비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금융당국은 코스피와 코스닥 공매도 거래대금 상위 10개 종목의 주가 움직임을 표로 보여주며 “공매도 거래대금과 공매도 비중이 높았던 상위 10개 종목을 살펴보면, 규칙적인 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외국인 공매도 증가는 롱숏전략(매수·매도 동시 활용)에 따른 매수·매도 확대 등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반응은 싸늘함을 넘어 분노에 가까웠습니다. 내가 투자한 종목은 분명히 내렸는데, 공매도와 관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냐는 겁니다. 한 LG디스플레이 투자자는 “공매도 재개되고 한 달 만에 주가가 20% 급락했다. 금융위는 눈 뜬 장님이냐”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금융당국은 왜 이리 공매도를 좋아햐냐는 냉소 섞인 반응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개미들 단골 종목들은 공매도의 집중 폭격을 받았습니다. 셀트리온과 씨젠이 대표적입니다. 씨젠은 공매도 재개 첫날 코스닥 공매도 거래대금 1위를 기록했는데, 한 달간 주가가 33% 떨어졌습니다. 코스피 공매도 거래대금 1위인 셀트리온은 주가는 한 달 전과 비슷한 26만 원대입니다. 하지만 개미들은 공매도 악재가 선반영된 결과라고 말합니다. 공매도 재개를 앞두고 셀트리온이 타깃이 될 것이 확실하니 미리부터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신풍제약, 현대바이오, LG화학 등 다른 종목들도 공매도 직전의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식에 큰 재산을 건 개미들 입장에서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풍제약 주주는 “공매도가 없었으면 최소한 이 정도까지는 주가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 대부분은 공매도가 주가지수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개별 종목 별로는 공매도의 효과가 분명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평가되거나 투자심리가 위축된 종목 위주로 공매도가 유입되면서 주가가 하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안정적으로’ ‘원활하게’ ‘관계없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정부의 입장만 강조하는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소비자 중심의 포용적 금융’을 기치로 내세운 금융당국이 최소한 개미들의 마음을 헤아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 투자자들의 고충과 심정부터 공감하는 것이 포용적 금융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박의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