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보유세 논의 안해"…5시간 뒤 "하겠다"

입력 2021-04-26 17:34
수정 2021-04-27 03:52

더불어민주당이 주요 민생 이슈에 ‘백가쟁명식 처방전’을 쏟아내 혼선을 빚고 있다. 부동산 문제 해법을 두고 연일 다른 메시지가 나오고 있는 데다 암호화폐 대응은 당정 간 엇박자가 감지된다. 코로나19 백신 수급 방안을 두고선 당내 대권주자 간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보궐선거 참패로 당황한 여당이 정책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유세 완화론 두고 우왕좌왕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6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당분간 부동산 세금 논의는 없다”고 밝혔다. 선거 패배 후 당 일각에서 부동산 보유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이에 대한 반발 기류 또한 거세지는 등 내분 양상으로 흐르자 지도부가 나서 선을 그은 것이다. 최 수석대변인은 “세금 완화를 검토한다는 얘기가 나오니 곤혹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고용진 의원은 이날 오후 당정 협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법안이 (기재위에) 들어온 게 몇 개인데 부동산 세금 논의를 왜 안 하냐”며 “이미 제기된 문제에 선을 그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지도부가 보유세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지 다섯 시간여 만에 기재위 간사가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다.

최근 경기 분당이 지역구인 김병욱 의원이 종부세 부과 주택 가격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보유세 완화 의견이 돌출했다. 이에 강경파 의원들이 “부자 감세냐”고 공격하면서 자중지란이 벌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단 지도부 출범 때까지는 시간을 끌겠다는 전략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날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도 기자들과 만나 “투기세력의 뒤를 쫓아가는 듯한 모습은 정책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고 거들었다. 암호화폐도 ‘정부 탓’만2030세대 최대 이슈인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입장을 두고서도 당내 대응기구 설치 여부부터 상반된 의견이 나오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최 수석대변인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당내 대응 주체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며 당 차원의 암호화폐 관련 기구를 발족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한준호 원내대변인이 “당내 주요 정책 관련자들과 소통해봤지만 대응기구 발족은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에서 대응 방향이 하루 만에 뒤집힌 것이다.

여당이 암호화폐 관련 정책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표출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향후 정책 기조에 대해서도 “기구가 출범하면 논의해봐야 한다”(민주당 기재위원)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개별 의원들은 지난 22일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암호화폐 투자를 경고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오영환 민주당 의원이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경고 메시지를 통해 투자자 불안만 가중하면 안 된다”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백신 대책을 두고서도 충분한 백신을 확보했다는 정부 입장과 달리 여당에선 백가쟁명식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백신 특사 파견을 주장하는 의견이 야당은 물론 우리 당에도 있어 협의해 보려고 한다”고 했다. 신현영 의원은 백신을 맞은 후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그 치료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당권주자인 송영길 의원은 러시아 백신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與 내부 혼선 더 심해질 수도”선거 참패 후 민주당이 반성과 쇄신을 외치며 민생 문제 해결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부에서 정돈되지 않은 의견이 쏟아지며 정책 방향 설정부터 엉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큰 방향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아니라 선거 참패 후 갑자기 당황하면서 어떻게 민심을 달랠까만 생각하다 보니 혼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 땜질 처방만 고민하고 있는 탓”이라고 지적했다.

정권 말 여당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난맥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타면서 당에서도 정부와 다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막상 당 지도부는 공백 상태라 가르마를 타줄 리더십이 없다는 것이다. 당이 정권 초·중반기 청와대 주도형의 정책 메커니즘에만 익숙하다 보니 정권 후반부에 와서 ‘똥볼’을 차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앞으로 문 대통령 지지율이 더 떨어지고 새로운 대권주자가 부각되면 현 권력과 신권력 간 정책을 둘러싼 당내 알력 싸움이 본격화해 혼선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했다.

고은이/강영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