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75% "조세 불공정"…'큰 정부'가 자초한 신뢰 위기다

입력 2021-04-22 17:51
수정 2021-04-23 00:07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조세부담 국민 인식 설문조사’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국민 10명 중 7명이 현행 조세제도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조사 결과는 쉽게 믿기 어려울 정도다. 소득계층 가운데 중산층(소득 3분위)에서 특히 그런 응답이 높다(83.9%)는 것에서는 위기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현행 조세제도가 특정계층에 더 유·불리하기 때문’(38.9%)이라는 응답도 예사롭지 않다. 정작 정부는 두렵고 겸허한 자세로 이런 결과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 4명 중 3명이 조세 제도에 불공정하다고 느낀다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세금은 국가가 합법성을 갖고 국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징세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믿음이 깨진 것은 현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많다. 우선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에 따라 문제점을 보완하지 않고 38.9%(2018년 기준)에 이르는 면제자를 그대로 뒀다. 이런 상태에서 25차례나 되는 ‘헛발질’ 부동산 대책으로 집값은 집값대로 올려놓고, 엉뚱하게 1주택 중산층에까지 보유세 폭탄을 안겼다. 유리알 지갑을 가진 봉급생활자만 세금을 과중하게 부담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조사에서 특히 더 주목할 것은 증세 반대 여론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64.6%가 증세에 반대한다고 답했고, 이들은 증세에 앞서 조세제도 및 조세행정 투명성 강화(32.4%)와 각종 복지 지출 효율화(21.5%), 세출 구조조정(20.7%)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는 복지 확충을 이유로 지난 4년간 흥청망청 재정을 운영, 나랏빚이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을 넘겼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의 부채 증가 속도가 분석 대상 35개국 중 가장 빠르다며 두 차례나 부채 관리를 경고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현 정부의 재정운영 능력과 의지에 대해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조세 불공정성 논란이 현 정부를 넘어 국가체제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증세론을 솔솔 흘리고 있다. ‘큰 정부’가 초래하는 필연적 결과를 지금이라도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의 장기 발전은 생각도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