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국민의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 개발에 나섰다. 국내총생산(GDP) 통계가 국민의 행복도와 삶의 질 추이를 오롯이 포착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한은 통계국은 22일 '삶의 질 관련 우리나라 국민계정통계 개선 방안 도출'에 관한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냈다. 입찰을 위한 연구계획서는 다음달 18일까지 받는다. 이번 연구용역 선정자는 한은 통계국과 함께 국민계정(국민소득, 국내총생산 통계)을 개선 방안 등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한다. 삶의 질을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 개발·조사 내용도 보고서에 담긴다.
통계국은 이 같은 용역을 바탕으로 삶의 질 지표를 국민계정의 보조계정인 '위성계정(satellite account)' 형태로 새로 산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존 삶의 질을 더 오롯이 반영하기 위해 국민계정 통계를 손질하는 방안도 병행한다.
용역 결과에 따라 통계청이 지난 2018년 발표한 '삶의 질 종합지수'와 비슷한 지표를 산출할 가능성도 있다. 통계청은 당시 지표 발표를 통해 2015년 기준 삶의 질 종합지수는 111.8로 기준연도인 2006년(100)에 비해 11.8%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기간 1인당 GDP(실질 기준)는 28.6% 증가했다. 국민 삶의 질 개선 정도가 경제성장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이다.
한은이 삶의 질 지표 발굴에 나선 것은 GDP가 구성원의 행복과 사회 발전의 척도로 삼기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제기에서 비롯했다. 한 나라의 생산 활동 단순 합산한 GDP 통계는 소득 불평등에 따른 구성원의 고통과 가사노동의 가치를 제외한다. 반면 환경을 파괴하는 일마저 생산 활동으로 분류한다.
1974년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주장한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이 현실화됐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면 행복이 비례해 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도 2009년 "양적·물질적 성장에 매몰된 GDP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 뒤 GDP 논란은 보다 뜨거워졌다.
GDP를 산출하는 한은도 이 같은 문제제기에 공감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017년 한 콘퍼런스에서 "GDP가 포착하지 못하는 '삶의 질'도 균형 있게 측정하는데 더욱 힘써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GDP 체계를 개선하는 방안과 함께 국민계정의 위성계정을 발굴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